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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일상의 탈출구 동묘시장[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입력 | 2021-06-18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똑같아 보인다는 생각이 이따금 들 때가 있다. 출퇴근하면서 매일 같은 길과 고층건물을 보게 된다. 평일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도시의 단조로움을 참다못해 염증이 나면 서울 속에서 다양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그곳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동묘시장, 도깨비시장, 벼룩시장, 서울풍물시장 또는 구제시장.

옛날 청계천과 황학동에 있었던 이 시장은 지금 1호선 동묘앞역과 1, 2호선 신설동역 사이 청계천 북쪽에서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가게와 노점이 섞인 곳에 있다. 갈 때마다 막다른 골목, 좁은 거리를 헤매다가 길을 잃을뿐더러 결코 같은 가게를 되찾을 수 없는 것이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다.

12년 전 이곳을 처음 갔을 때부터 나는 이곳에 도취됐다. 이 시장은 볼거리의 보고(寶庫)라는 사실을 첫눈에 깨달았다. 지난주 토요일에 방문했을 때도 ‘노점 운영을 금지합니다’라고 경고하는 현수막을 아무도 개의치 않고 골목마다 들어선 노점에선 파는 사람들, 사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란하고 약간 거칠고 시끌벅적한 거리가 발랄하고 흥미진진하다. 축제 같다. 이 혼돈이 나를 항상 끌리게 만든다.

여기서는 마치 지난 50년 동안 패션업계를 거쳐 간 모든 유행이 모여 있는 것 같다. 헌 옷을 빨아서 ‘레트로’로 파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레트로’라는 유행을 몰라도 그저 평생 입었던 스타일의 옷을 고르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남자들의 머리스타일도 평소 서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습보다 다양하다. 성인용품 가게 앞에서 머리 긴 남자가 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주중에는 도대체 어디 있는지 영 모르겠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아서 걷기 불편한 분들이 이동용 기기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남녀노소와 내외국인까지 별의별 사람이 이 동네에 모여 있다. 이런 모습은 서울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키가 크고 눈이 동그랗고 코가 높아서 나도 볼거리가 된다. 보통 도심에서는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데, 왠지 이 시장에만 오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무작정 말을 건다. 나쁜 의도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다. 이 시장에는 언제나 안전한 느낌이 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한 가게에는 수없이 많은 전자제품 케이블만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캠핑의자에 쪼그려 앉아 부피가 큰 남자용 반지를 판다.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어린이 장난감 옆에 전시돼 있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모든 종류의 휴대전화, 옛날 사진, 일상용품이 다 이곳에 모여 있다. 골동품 가게도 많다. 물론 전문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가게들도 있다. 예컨대 오토바이족들을 위한 가죽 재킷을 주문제작해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항상 리스크는 사는 사람이 지는 법, 10년 전 이곳에서 미국 1달러짜리 은화를 몇 개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위조 동전이었다.

앉아서 저렴하게 맛있는 밥 먹고 막걸리 한잔을 할 수도 있다. 먹으면서 또 관찰하기 마련이다. 지난번에 밥을 혼자 먹고 있을 때 밥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웬 포크를 가져다 주셨다. 저, 젓가락질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나는 여기가 좋은데 아내의 반응은 정반대다. 지난주 시장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걱정부터 시작했다. 복잡한 노점 거리를 보고 나에게 “사람이 너무 많고 마스크를 코까지 덮지 않은 것을 보라”고 지적했다. 하긴 아내의 말이 맞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그날 그 자리에서 잊혀진 것 같았다. 더 조용한 동네로 이동해 더운 날씨에 아이스커피를 즐겼다. 그래도 도시의 단조로움을 깨고 싶을 때 나는 동묘시장 쪽으로 갈 것이다. 아내와의 데이트 코스는 다른 곳으로 더 찾아봐야겠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