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출신 보이드 개인전 ‘보물섬’ 밑그림 위에 투명풀로 볼록 점 찍어 검은 물감 바른뒤 닦아서 렌즈 효과 서구에 잃은 호주의 역사 표현
서구의 역사관이 놓친 시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원해 온 대니얼 보이드(39·사진)의 개인전 ‘보물섬’이 17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다. 2019년 부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 전시로, 신작 23점을 선보인다. 2014년 모스크바 국제비엔날레,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고찰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왔다. 그가 나고 자란 호주의 문화적, 역사적 사건들은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겼다.
전시 제목 ‘보물섬’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동명의 소설에서 따왔다. 보물섬은 작가의 초창기 작업부터 등장했다. 작가는 호주 식민지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 받아온 제임스 쿡 선장과 조지프 뱅크스 경을 해적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언급된 보물섬의 지도, 스티븐슨이 사용하던 접시를 화폭에 담았다. 문학, 대중문화를 차용한 그의 작품을 보면 유럽인의 관점으로 기술된 역사가 견고해진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대니얼 보이드가 친누나를 그린 ‘Untitled(TDHFTC)’. 국제갤러리 제공
작가는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투명한 풀로 볼록한 점들을 찍는다고 한다. 검은 물감을 캔버스 전체에 펴 바른 뒤 닦아낸다. 그러면 검은 테두리 사이로 점들이 보이면서 숨겨진 그림이 나타난다. 무수한 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다. 역사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 작가의 의도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전부 다 보이지 않는 밑그림은 서구에 의해 소실됐던 역사를 뜻한다.
“나의 작품은 모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선조들의 존재로부터 시작한다”는 그의 말은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8월 1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