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캐니 밸리/애나 위너 지음·송예슬 옮김/404쪽·1만8500원·카라칼

‘언캐니 밸리’는 돈과 권력을 거머쥔다고 여겨졌던 테크 업계에 2013년부터 몸담은 애나 위너가 빅데이터 회사와 오픈소스 기업에서 일하며 실리콘밸리를 들여다본 기록이다. 자율과 평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운 스타트업들의 이면에 자리 잡은 성공 만능주의, 성차별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책은 대중이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이면에 숨겨진 실상을 고발한다. 저자는 사용자 행동분석 플랫폼 믹스패널과 오픈소스 서비스 깃허브에서 일하며 겪은 성차별과 더불어 직원들을 수익 창출의 도구로 여기는 비인간성을 낱낱이 기록했다. 예컨대 저자의 첫 회사였던 믹스패널의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당신은 목적을 받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여기서 목적은 회사 수익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회사를 받드는 삶을 위해 ‘일은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는 규칙을 철저히 따랐다. 이런 현실에 지쳐 이직한 실리콘밸리 기업 깃허브도 다르지 않았다. 직원들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고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지 않은 향정신제를 복용한다. 저자는 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지만, 곧 온라인에서 같은 약을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단순히 실리콘밸리 직원들의 고충을 털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과 만능주의에 빠져 윤리성을 상실하는 과정도 가감 없이 서술한다. ‘갓 모드’ 관행이 대표적이다. 갓 모드란 마치 신처럼 업무를 위해 수집된 온갖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걸 말한다. 저자는 광고 솔루션을 제공한 첫 직장의 사례를 든다. 고객사가 광고효과가 좋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할 경우 고객사의 거래 내역뿐 아니라 회원정보까지 통째로 볼 수 있었다는 것. 고객사의 데이터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저자는 내밀한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직원이 존재한다는 걸 안 뒤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어떤 애플리케이션(앱)도 내려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