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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국가의 흥망이 바다에 달린 이유는

입력 | 2021-06-19 03:00:00

◇바다의 시간/자크 아탈리 지음·전경훈 옮김/336쪽·1만5000원·책과함께




인류의 첫 문명사적 전환으로 꼽히는 농경에 대해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농경을 통해 비로소 문자나 계층 같은 인류 문명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게 지배적 견해다. 반면 인류가 수렵을 포기하고 농경을 택하면서 여가시간이 대폭 줄고 노동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농경문화는 수직적 지배체제로 이어져 피지배층에 대한 폭력적 억압을 낳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자유롭고 발전하는 국가들의 차별화 요소를 선원과 농부의 차이로 설명한다. 고대부터 바다는 다양한 문명의 통로가 돼 왔으며 이에 따라 주요 도시를 해안에 건설한 나라가 강대국이 됐다는 것. 고대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르네상스 이후 베네치아 플랑드르 영국, 현대의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모두 그랬다. 반면 농경을 통한 지대에 길들여진 내륙국가는 폐쇄적 기득권에 갇혀 뒤처졌다.

아탈리의 바다 예찬은 끝이 없다. 오랫동안 바다를 통해 번영한 나라치고 장기간 독재가 지속된 곳은 없다고 주장한다. 해상무역을 통해 물산은 물론이고 여러 사상들이 들어와 민주적 시각을 끊임없이 자극해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 같은 대륙국가와 대비되는 미국, 영국의 해양 강대국이 대표적이다.

미래학 대가답게 아탈리의 시선은 미중 갈등 이후 해양 지정학으로 나아간다. 1956년 수에즈 위기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에서 보듯 냉전 이후 초강대국의 힘이 투사되는 바다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주요 해상 운송로와 해저 유전의 경제적 효용은 막대하다. 특히 핵무기를 비행기나 미사일로 운송하는 것보다 바다 아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게 군사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미중 갈등과 맞물려 남중국해, 동중국해, 인도양, 홍해, 페르시아만, 지중해, 대서양 순으로 국가 간 분쟁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