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술사/서배스천 스미 지음·김강희 박성혜 옮김/440쪽·2만2000원·앵글북스

에드가르 드가는 절친한 친구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부인을 모델로 초상화 ‘마네와 마네의 부인상’을 그렸다. 그림 오른편에 피아노를 치고 있는 마네의 부인 수잔은 얼굴 부분이 찢겨 있다. 그림을 칼로 찢은 건 남편 마네였다. 앵글북스 제공

마네가 아내 그림을 훼손한 이유는 무얼까. 이 사건의 배경에는 예술에 대한 두 거장의 철학적 차이가 감춰져 있다. 마네에게 진실이란 파악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늘 모델에게 화려한 의상을 입히는 등 예술에서 유희와 위트를 추구했다. 이에 비해 드가는 외형에 드리워진 베일을 걷어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드가는 진실은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집요하게 진실을 추구했다. 즉, 드가가 그린 마네 부부의 초상화는 그저 두 개인을 묘사한 게 아니라 둘의 결혼 생활에 숨겨진 진실을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마네에게는 곤욕이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었기 때문. 마네는 아내뿐 아니라 화가 베르트 모리조도 사랑했다. 절친 드가는 이를 알았지만 자신도 모리조에게 끌렸다. 초상화 속 수잔은 남편에게 등을 돌린 채 연주에 몰두해 있다. 마네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 모습이다. 누군가를 꿈꾸는 듯한데 그 대상은 아마도 모리조일 것이다. 결혼 생활의 잔인한 진실이 담긴 이 초상화는 마네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도 마찬가지였다. 천재였던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었으니 후원자의 요청으로 만난 앙리 마티스(1869∼1954)였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마티스를 초대한 순간부터 괴로웠다. 뛰어난 언변과 냉철한 태도의 마티스는 왠지 그를 주눅 들게 했다. 반면 마티스는 자신보다 어린 그를 존중하고 친구가 되는 걸 반겼다.
피카소와의 만남 이후 마티스는 ‘삶의 기쁨’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명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당시 작품에는 풍성한 색채와 자유분방함이 가득하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야수파를 거부하고 차분한 색채의 균형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또 마티스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강조한 평면에서 벗어나 3차원을 파고들었다. 이는 곧 ‘두 여인의 누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 세계의 시작이었다.
경쟁의 성격을 띤 이들의 우정은 훗날 세상에 걸출한 명작들을 남겼다. 세상의 범인들이 그렇듯 그들의 경쟁 역시 세속적인 이유가 깔려 있었지만 말이다. 친밀해지기도 혹은 살벌해지기도 한 예술가들의 관계를 통해 각자가 거장으로 우뚝 선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