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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의 길 “월성 원전, 겨눌 것인가 회군할 것인가”

입력 | 2021-06-20 10:52:00

文 탈원전 정책 선포 날, 임원 배상책임보험 든 한수원




김오수 검찰총장(위). 2018년 6월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당시 비상임이사 로서 홀로 반대한 조성진 경성대 교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김오수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부장단과 함께 법무부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직제개편안에 우회적으로나마 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상당히 세다”고 말했다니, 김 총장의 결기는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법조계는 다음 ‘싸움’에 촉각을 더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일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수익성을 조작한 자료를 근거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수사에 나선 대전지방검찰청은 이른바 ‘월성 3인방’인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장관, 채희봉 전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직권남용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하기로 하고, 5월 대검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친여 성향으로 알려진 신성식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제동을 걸어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권 심장 겨눈 칼, 월성 1호기 수사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1호기. 동아DB

대전지방검찰청은 지난해에도 이들에 대한 기소를 추진했다. 이에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느닷없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카드로 대응했다는 주장이 있다. 추 전 장관은 오로지 승리를 바란 듯 ‘중단 없이’ 돌격했지만, 먼저 미끄러졌다. 그사이 법원은 백운규 전 장관 구속을 기각했다. 대전지검은 3인방 기소 보고를 검찰총장 직무대행이던 조남관 대검 차장(현 법무연수원장)에게 다시 했는데, 조 차장은 결재를 피했다. 김오수 신임 총장에게 공을 넘긴 것. 김 총장이 결재한다면 대단한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가 아직도 가동하고 있느냐”고 질책한 후 추진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배임은 피의자가 윗선 지시를 받고 저질러도, 또 윗선 지시를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하지 않아도 ‘확대 수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맞불이 일었다. 감사원 발표 직후인 지난해 11월 탈핵단체들은 최재형 감사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는데, 5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이를 근거로 수사에 착수한 것. 최 원장이 직권을 남용했다면 월성 3인방에 대한 배임죄 적용은 어려울 수 있기에 관심은 다시 원점으로 쏠리고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운영을 결정하는 주체는 한수원 이사회다. 한수원은 7000억 원가량을 들여 월성 원전 1호기를 완벽히 수리해 계속 운전하고 있었다. 과연 한수원 이사들은 원전을 조기 폐쇄하고 싶었을까.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탈원전을 공약했다. 대통령 취임 후 갓 한 달을 넘긴 2017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공식 선포했다. 같은 날 한수원이 묘한 행동을 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이 입수한 한국전력공사(한전)와 산하 발전회사의 ‘최근 5년간 임원 배상책임보험 가입현황’에 따르면 2017년 6월 19일 한수원은 동부화재보험(현 DB손해보험)에 3억3100만 원을 내고 500억 원 한도의 1년 만기 보험에 든 것. 1년이 지난 2018년에는 현대해상(3억3600만 원), 역시 만기가 도래한 2019년과 2020년에는 롯데손해보험(3억1000만 원, 3억6500만 원)에 가입했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보험 가입 추진안’이라는 내부 자료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새 정부 출범으로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위험 등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보험을 통해 보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한수원은 과거에도 이 보험에 가입했다. 감사원이 “발전(發電) 공기업은 배상보험이 필요 없다”고 지적해 2005년부터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자 바로 보험 가입을 검토하고,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공식 선언하자 12년 만에 ‘조용히’ 가입한 것이다.

한수원은 한전이 100% 투자한 회사다. 한수원의 손해는 곧 한전의 손해로 이어지므로 한전 주주들은 한수원 이사회 결정에 주목하게 된다. 대전지검이 월성 3인방을 배임 혐의로 기소해 유죄를 받아내면 주주들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조기 폐쇄를 의결한 한수원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험이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된다. 주주들이 자회사 결정을 방기한 한전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전 또한 2017년부터 배상액 1000억 원인 한 보험에 가입했다.

김오수-박범계, ‘빅딜’ 할까
한수원과 한전이 이 같은 ‘대비’를 하고 1년이 지난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는 경제성 수치가 조작된 자료를 근거로 잘 돌아가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이때 유일하게 반대한 이가 비상임이사였던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다. 조 교수는 당시 이사회 의결 사안을 감사원과 검찰은 물론, 야당에도 전했다. 한수원 이사회 의결 내용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초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 변경을 허가해줄 수 있는 2020년쯤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2018년 4월 2일 참모들에게 “월성 1호기는 언제 가동을 중단하느냐”고 물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조기 폐쇄에 난색을 표하자 백운규 장관이 “너, 죽을래? 즉시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써”라고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월성 3인방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 수사는 문 대통령을 향할 가능성도 있다. 김 총장은 월성 3인방 기소를 결재할까. 아니면 불기소 카드와 박범계 장관의 검찰 개편안 포기를 맞바꿀까.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94호에 실렸습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