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이야기’ <8> 산정화구호
제주시 물장오리 산정화구호는 오름 정상에 형성된 대표적인 습지로 제주의 창조여신인 설문대할망의 전설, 조선시대 기우제, 제주도4·3사건 무장대 훈련장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 기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2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사라오름.
백록담 정상으로 가는 성판악탐방로 중간지점에 있는 사라오름 분화구로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전날 비가 내린 덕분에 분화구에 물이 가득한 전형적인 산정화구호 모습 때문이었다. 한껏 푸르름을 머금은 참빗살나무, 아그배나무, 산개벚나무 등이 병풍처럼 화구호 주변을 둘렀고 무당개구리는 발소리에 놀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제주조릿대 풀숲에서는 맹꽁이 소리가 요란했고 물속에서는 수많은 올챙이가 분주히 헤엄쳐 다녔다.
사라오름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물장오리(해발 937m)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산정화구호다. 10일 정도면 물이 상당량 빠지는 사라오름과는 달리 물장오리는 가뭄이 심할 때도 물이 차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지역인 물장오리는 현재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13일 오전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물장오리 산정화구호로 들어서자 베일에 싸인 비경이 드러났다. 한라산과 오름을 창조한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물 깊이를 재다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떠올라 옷깃을 여몄다. 설문대할망 전설 등으로 물장오리는 백록담, 영실과 더불어 한라산 3대 성소(聖所)로 불린다. 화구륜은 빽빽한 숲을 이뤘고 이방인에게 놀란 섬휘파람새가 경계의 소리를 냈다. 습지에는 큰고랭이 등 습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 생물 종 다양성과 기후변화 비밀 간직
오름 정상의 둥근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찬 산정화구호는 이색적인 최고 경관미를 선사했다. 구름이나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신비감을 더했다. 이런 산정화구호를 품고 있는 오름은 사라오름, 물장오리를 비롯해 물영아리, 물찻오름, 어승생악, 동수악, 금오름, 원당봉 등 8곳이다. 동수악과 금오름은 화구호가 딱딱한 땅으로 변하는 ‘육화(陸化)’ 단계를 밟고 있으며 원당봉 화구호는 사찰 연못으로 변했다.
이들 산정화구호는 과거 기후와 식생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2018년 한라산천연보호구역 학술조사에 따르면 사라오름과 동수악의 퇴적층을 추출해 연구한 결과 2700년, 3300년, 4000년, 4700년, 5700년 전에 상당히 건조한 기후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600∼700년의 주기성을 보이는 건조성 기후는 제주지역 기후변화 특성을 규명하는 자료가 된다. 물장오리 퇴적층의 화분(꽃가루) 분석을 통해 다소 한랭했던 기후가 고온다습으로 변하면서 습지가 확장했으며 낙엽 및 상록 활엽수가 혼재한 식생이 발달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발 380m인 물영아리의 습지 퇴적물은 고대 기후뿐 아니라 고려, 조선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박정재 서울대 교수팀이 물영아리 화구호 습지의 깊이 4m까지 퇴적물을 확보해 2cm 간격으로 화분과 세립 탄편(불 탄 조각)을 분석한 결과 탄편 유입량이 1150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1250∼1300년에 정점을 보인 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고려 말 중국의 원나라가 제주에 주둔해 목마장을 조성하면서 중산간(해발 200∼600m)에 불을 질러 나무를 없앤 대규모 화입(火入) 때문으로 파악됐다.
박 교수는 “농경이나 목축이 시작되기 전 제주의 중산간 일대는 일부 오름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초지와 달리 참나무, 서어나무, 느릅나무 등으로 이뤄진 산림지대였다”며 “원나라가 목마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재와 유사한 크기와 형태의 광활한 초지가 만들어지는 등 인위적인 경관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 제주 사람의 애환 간직한 산정화구호
1966년 조성된 제주지역 1호 골프장에서 물장오리 화구호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파이프를 매설하기도 했다. 한라산 환경보호활동가인 이범종 씨는 “물장오리 인근에서 지상으로 노출된 수도 파이프를 발견했다”며 “파이프 외에도 과거 숯을 굽거나 목재를 얻기 위해 임시 기거하다 버린 쓰레기 흔적이 자주 보인다”고 말했다.
고문헌도 산정화구호를 기록하고 있다. 1530년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올악(물장오리)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데 산 위에 못이 있다. 원당봉 봉우리 위에 못이 있어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거북, 자라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분화구 내부가 농지인 입산봉을 두고 ‘산 위에 못이 있는데 연꽃과 순채가 난다’는 내용이 나와 과거에 연못 형태의 물이 담겼던 것으로 보인다.
1653년 간행된 이원진(1594∼1665)의 탐라지에는 물장오리에 대해 ‘산봉우리에 용못(龍池)이 있는데 깊이를 잴 수 없다.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면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친다.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용, 기우제 등의 표현을 한 것은 당시에도 성스러운 장소로 여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구 경사면에 토사-낙엽 등 쌓여 만들어진 듯
산정화구호 형성의 비밀은…
물을 가둬두는 산정화구호가 형성되려면 원형 분화구가 필수적이다. 제주의 368개 오름 가운데 원형 분화구는 53개, 원형과 말굽형이나 원추형 분화구가 함께 있는 복합형 오름은 39개다.
이들 오름 가운데 8개 오름만이 산정화구호(또는 습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화구 경사면에서 흘러내리거나 유입된 토사와 낙엽 등이 쌓여서 물을 담아둘 수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김태호 제주대 교수는 “화산 쇄설물(스코리어)로 이뤄진 물영아리는 투수성이 높아 물이 고이기 어렵지만 분화구 안쪽으로 들어온 세립질 풍화물질이나 분화구에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불투수층에 의해 산정화구호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비슷한 유형의 화산체가 있기는 하지만 투수성이 높은 화산체에 습지가 만들어진 것은 드문 사례로 지형학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 물장오리 산정화구호는 다른 화구호와 달리 흙처럼 끈적끈적한 점토 함량이 많아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담아둘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점토 함량이 많은 습지는 오름 화구벽의 풍화 작용과 함께 외부에서 날아온 먼지가 퇴적한 것으로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지만, 특정 오름에만 점토가 쌓인 이유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