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일각 이준석 때리기는 자충수 국민의힘도 이준석 효과만으론 한계 뼛속까지 혁신이 대선 승패 가를 것
천광암 논설실장
현명한 사람은 흔들리는 나무에서 바람을 본다. 동남풍인지, 북서풍인지, 비를 머금은 바람인지…. 그런데 세상에는 바람이 싫다고 나무를 베어내려 덤비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 이후 강경 친문들의 모습이 딱 그런 짝이다. 이준석이란 나무만 찍어내면, ‘이준석 현상’으로 나타난 세대교체·정권교체 바람이 잠잠해질 것이라 믿는 모양이다.
이들의 이준석 ‘때리기’는 취임 첫날 따릉이 출근 장면에서 막이 올랐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인데 쇼를 했다”, “헬멧을 안 썼다” 등 시답잖은 트집이었다. 멀쩡한 국산 구두를 놓고 “대표 되더니 페라가모 신고 다닌다”는 마타도어도 나왔다. 1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과 김남국 의원이 나서서 “산업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지원 자격이 없는 국가 사업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이미 10년 전에 끝난 일로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당시 제출한 지원서 등도 공개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가려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준석 현상’에서 확인된 민심을 변화의 계기로 삼기보다 ‘이준석 때리기’에 몰두하는 행태가 여당에 마이너스라는 점이다. ‘내곡동 생태탕’을 떠올려 보면 결과가 뻔히 보인다. 주거 등 서울시민들의 절박한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오세훈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 치중한 결과는 여당의 기록적인 참패였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이준석 대표에 대해 감정적 대응을 하는 걸 유권자들이 좋게 봐주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야당이 여당보다 크게 잘했던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쪼그라든 기득권이라도 서로 차지하겠다며 사분오열 다투는 모습만 보여줬다. ‘이준석 현상’은 거대 여당이 의석수만 믿고 변화에 둔감한 공룡이 됐으니 야당 너희들이 먼저 바꿔 보라는 채찍질이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국정농단 탄핵 후 처음 30%를 찍었다고 하지만 이는 언제든지 거둬질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이 여당의 퇴행적인 행태만 믿고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민심이라는 바다가 정당이라는 배를 얼마나 쉽게 뒤집는지는, 1945년 영국 총선이 잘 보여준다. 보수당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을 전면에 세우고도 노동당에 213 대 393으로 참패했다. 당 개혁을 방치하고 복지정책 등 내정 주도권을 노동당에 내준 것이 원인이었다. 힘겨운 전쟁을 치르느라 여력이 없었던 것인데도 민심의 선택은 냉정했다.
영국의 보수당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6년간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한 끝에 정권을 되찾았다. 데이비드 윌레츠 전 의원에 따르면 보수당은 당 조직과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돌파구를 청년과 여성에서 찾았다. 1946년 ‘젊은보수당’을 창설해 청년들을 대거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또 ‘남성 노동자’ 색채가 강한 노동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여성 소비자’를 전략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환경이 있었기에 25세의 마거릿 대처가 총선 출마를 위해 보수당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보수당은 또 당 재정을 돈 많은 출마자에게 의존하던 방식에서 광범위한 소액 모금 방식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부자당’ 낙인을 지웠고 청년 등 비(非)기득권 계층의 출마 문턱을 낮췄다. 경제 정책에서도 탈(脫)규제와 반(反)국영화 등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확고히 하는 한편으로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이는 실용(實用) 노선을 취했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