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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빵빵해야 ‘활기찬 노년’

입력 | 2021-06-23 03:00:00

30대부터 줄어 들어 70대엔 절반 수준
근육량 적을수록 골절-사망위험률 높아
美-日-韓선 ‘근감소증’에 질병코드 부여
단백질 챙겨먹고 유산소-근력운동 병행



게티이미지


#《60대 후반 임미애(가명) 씨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엔 잘 다니던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 어렵고 걸음도 자꾸 느려진다. 그냥 ‘이게 늙어가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활기찬 일상을 누리는 친구들도 많다. 》

60대 중후반이 되면 건강상태에 따라 일상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진다. 누구는 편하게 외출하고 아침저녁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가 하면, 배우자나 자식들의 도움 없이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있다. 집 안에서도 넘어질까 두려워 늘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근육’에 있다. 우리 몸속 근육량은 3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70대가 되면 절반 수준이 된다. 그동안은 나이가 들어 근육량이 감소하는 것을 노화의 한 과정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감소의 범위를 벗어나 일상생활에 위협을 느낄 만큼 근육이 제 기능을 못 할 때는 근감소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2016년 미국은 이러한 근감소증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했고 일본은 2018년 4월 질병등록을 마쳤다. 우리나라도 올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8차 개정안에 근감소증 진단코드를 포함시켰다. 이제 근감소증은 노년이 되면 생길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 아닌 대비해야 하는 질환이 된 것이다. 근감소증은 10년 내 골다공증처럼 노인의 대표적인 질환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고령사회, ‘넘어져서 죽는 시대’ 올수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2017년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를 넘어서면서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에는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이래 단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또 다시 9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갈아타는 셈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옮겨 간 속도가 일본(24년), 독일(40년), 미국(73년), 프랑스(115년)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훨씬 빠르다.

근감소증(사코페니아)는 이런 노년기에 겪을 수 있는 대표적 질환 중 하나다. 근감소증이 생기면 팔과 다리 등을 구성하는 골격근과 근력이 정상보다 크게 줄어든다. 별다른 질병이 없는데도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힘이 없고 기력도 약해진다. 입맛이 없어 식사도 잘 하지 못한다. 특히 이유 없이 살이 빠지기 시작한다면 근감소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 걷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데에도 힘이 부친다면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근육량은 3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50대부터는 매년 1∼2%의 근육이 소실되고 70대가 되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신체에서 체중의 약 50% 이상이 근육인 점을 고려하면 근육의 감소가 얼마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지 예상할 수 있다. 근육이 약해지면 잘 넘어지고 골절이 돼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골다공증과 근감소증이 동반되면 골절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기도, 식도도 모두 근육으로 돼 있어 근감소증이 생기면 이 부분의 근육도 약해져서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지고 숨쉬기도 어렵다.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도 근감소증 유병률이 낮지 않다. 2014년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교실 연구진이 대한비만학회지에 발표한 ‘한국 노인 남성에서 근감소증과 연관된 위험요인 평가’ 논문에 따르면 한국 60세 이상 남성의 근감소증 유병률은 11.6%이고 80대가 되면 38.6%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장애 등에 영향… 중증 발기부전 위험도 2배


근감소증으로 사망 위험 증가와 관련한 최신 논문은 2018년 노인의학분야 국제학술지 ‘임상노화연구’에 게재됐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연구팀은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2014년 10월부터 2017년 8월까지 평창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1343명(남자 602명, 여자 741명)의 근육량, 근력과 건강 상태를 추적 관찰했다. 이 기간 29명이 사망했고 89명은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근육량이 줄고 근력이 떨어지면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근감소증으로 인한 건강 악화는 남성 노인에게 두드러졌다. 근감소증이 있는 65세 이상 남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사망하거나 요양병원에 입원할 확률이 5.2배(여성은 2.2배) 높았다. 또 성별과 관계없이 근감소증이 있으면 일상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 발생 확률이 2.15배 큰 것으로 조사됐다.

근력이 떨어진 남성 노인은 중증 발기부전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연구팀은 2016년 1월부터 2년간 강원 평창군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남성 노인 519명을 대상으로 근감소증과 발기부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519명 중에서 중증 발기부전 환자는 약 52.4%(272명)였으며 전체의 31.6%(164명)는 근감소증을 겪고 있었다. 근감소증이 없는 노인 남성 중 약 43%만이 중증 발기부전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근감소증 환자들 중에서 중증 발기부전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약 73%인 것으로 나타나 중증 발기부전 유병률이 약 1.89배로 높았다.

근감소증은 당뇨병, 대사증후군, 심혈관질환의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라매병원 연구팀은 비알콜성지방간질환과 근감소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환자는 사망위험이 크게 올라 증상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근감소증의 주요 원인은 노화로 인한 근육세포와 신체활동 저하, 영양불균형 등이 꼽힌다. 하지만 개인의 영양상태, 운동량, 기저질환, 유전소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근감소 속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 특히 골다공증에 비해 관리의 영역이 크다. 기본적으로 근육은 적절한 움직임과 자극이 없으면 쇠퇴하는데 근육량이 한번 줄어들면 기초대사량과 활동량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감소한다.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돼 움직이고 활동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근감소증 3가지 진단 기준은 골격근지표-악력-보행속도


근감소증은 근육량이 연령별 정상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감소한 경우를 말한다. 근감소 정도는 근육량과 근력을 평가해 진단한다. 근육량은 체성분검사로 측정하고 근력은 악력을 평가하거나 보행속도 등을 측정한다.

근육량이 연령별로 다르기 때문에 근감소증 역시 나이에 따라 다르다. 젊은 사람은 젊은층 근육량 평균의 표준편차에서 1∼2배 이상의 값보다 낮은 경우를 ‘근육량 감소’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젊은층에게 진단기준으로 제시할 만한 명확한 값이 정립돼 있지는 않다.

65세 이상에서는 근감소증을 정의하는 수치가 있으나 검사 방법에 따라 다르다.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법) 검사를 할 수는 있지만 주로 체성분검사나 덱사(DEXA)라고 불리는 ‘에너지방사선흡수계측법’으로도 측정이 가능하다.

근감소증은 근육량과 근력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근육량이 줄었다고 꼭 근감소증이 동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근력은 악력과 보행속도 측정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근육의 평가는 ‘근육의 양과 기능’으로 살펴본다. 한때 근감소증이 근육의 양 또는 근육의 질, 이렇게 단일 항목의 저하로 보았던 적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두 요소(근육의 양과 기능) 모두가 감소한 경우를 근감소증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제 막 질병으로 분류된 근감소증은 연구도 걸음마 단계다. 현재 전 세계 전문가들로 ‘합의된’ 기준은 있으나 아직 명확한 진단 기준은 없다.


 

운동과 단백질 섭취가 최선의 예방책


아직까지 근감소증 치료를 위해 처방할 수 있는 약제는 없다. 현재로서는 단백질, 비타민D 등의 영양소를 섭취하고 근력 운동으로 근육 양이 줄어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노인들은 주로 ‘걷기’ 운동을 많이 하는데 근감소증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유연성과 코어의 힘을 기르는 평형 운동을 추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단백질 섭취다. 이윤환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단백질은 계란 흰자, 우유 속 유청 단백질에 많이 들어있다”며 “같은 단백질을 섭취하더라도 근육 생성에 도움이 되는 필수아미노산인 ‘류신’과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강한 근육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몸무게 1kg당 1.0∼1.2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60세 이상 2명 중 1명 이상이 하루 권장량 이하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현아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2013∼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60세 이상 노인 3512명(남 1484명, 여 2028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 노인의 47.9%, 여성 노인의 60.1%가 하루 권장량 이하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석준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장은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은 단백질 섭취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흡수”라며 “아무리 단백질을 챙겨 먹어도 몸에 흡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백질 분해에 필요한 위산과 펩신도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는 저분자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