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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상훈]델타 변이 공포 확산, 위기 대응 곳간 채울 때

입력 | 2021-06-24 03:00:00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40만 명 넘게 나오던 지난달, 현지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몇몇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직원들을 위해 에어앰뷸런스(환자 이송용 비행기)를 띄워 한국으로 이송했다. 비행기가 한 번 뜨는 데 드는 비용은 2억 원이 조금 안 됐다. 비용보다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 기업들의 미담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통 큰 행보가 부러울 뿐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당장 한 달 한 달 대금 결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에어앰뷸런스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그저 마스크 열심히 쓰고 해열제 상비약 잘 챙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현지 기업들을 돕는 KOTRA 등 지원기관도 이런 대규모 지원은 엄두를 못 낸다.

코로나19 1차 백신 접종자가 1500만 명을 넘어서며 한 고비를 넘은 줄 알았던 상황이 인도발 델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며 새 국면에 들어섰다. 영국에선 98%, 러시아에선 99%의 신규 감염자가 델타 변이 감염자다.

겨우겨우 코로나19 악재를 딛고 일어서려는 기업에 델타 변이 팬데믹은 상상 이상의 공포다. 철강, 원유, 시멘트 등 원자재들의 잇따른 가격 상승이 현실화된 마당에 델타 변이 팬데믹으로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멈춰 서 버린다면,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의 부담을 제품 값에 채 반영도 하기 전에 수요가 꺾여 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비싸게 사들인 원자재로 만든 제품이 팔리지도 않고 창고에 쌓이는 악성 재고가 되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13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이고 국내에서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된 건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V자형 경기 회복 기대감이 바탕이 됐다. 기대감이 예기치 못한 변수로 꺾였을 때 나타날 파장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지나고 보니 기적같이 버텨낸 것이지, 전년 대비 수출이 두 자릿수 이상 퍼센트씩 감소하고 글로벌 물류가 또다시 막힌다면 살아남을 국내 기업은 많지 않다. 한 번 띄운 에어앰뷸런스는 탄탄한 기업의 미담이 되지만, 거듭되는 변이 바이러스의 공포는 해외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델타 변이 팬데믹 공포로 기업들이 생존을 걱정하는 지금, 한국의 정치권과 정부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까.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더 큰 팬데믹이 나타난다면 생계가 어려운 취약계층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기 어려운 영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다. 변이가 확산된 영국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비용 감소, 매출 증대’를 기대했던 기업들이 혼란에 빠지고 소매, 요식업, 레저 업체들은 대출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상황을 비켜 나가리라 장담하긴 어렵다.

어떤 업종과 기업이 위기를 겪을지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곳간을 든든히 채워 놔야 어려울 때 기업을 일으켜 세울 지원이 가능하다. 지금은 이들을 위한 촘촘하고 정교한 금융·재정 안전망을 구축해 놓는 게 우선이다.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다시 일어나려면 몇 배의 노력을 해도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지난 수차례 경제 위기를 통해 이미 체험했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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