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 본부에서 열린 ‘일의 세계 정상회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화상을 통해 코로나19와 고용 피해, 일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 아래에서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왼쪽)이 대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ILO 제공
김윤종 파리 특파원
교황의 기조연설은 1919년 ILO 설립 후 102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187개 회원국 정부, 노사단체 대표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일자리 감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동, 인간의 가치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코로나19로 대면 노동 특히 타격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노동기구(ILO) 본부 전경. 건물 내부는 3개의 큰 공간이 연결된 구조로 ‘노사 정의와 소통’을 상징한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올해도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ILO는 올해 역시 최대 1억30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유럽 각국은 필수 노동자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는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감소한 자영업자, 필수노동자에게 월 최대 1500유로(약 202만 원)를 지급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런 보조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일의 세계 정상회담’에서도 “변이 바이러스 창궐 등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재택·비대면·무인의 일상화
파리 근교 르발루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종합화장품 회사 로레알 본사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직장문화가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21일 만난 직원 마농 씨는 “코로나19에 따른 전면 봉쇄 조치가 끝났음에도 현재 주 2, 3일 재택근무 체제가 굳어졌다”며 “과거에는 새로운 성분 개발 등을 중시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환경친화적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직장인 4700명 중 72%가 “주 5일 내내 사무실로 출근하는 방식을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상당수 영국 기업들은 다음 달 19일 봉쇄 조치가 해제된 후에도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유연근무제를 고려하고 있다.
각종 인프라가 몰려 있지만 물가가 비싸고 인구 밀집도 또한 높은 대도시 대신 물가가 싸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중소 도시가 각광받는 모습도 뚜렷하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약 220km 떨어진 더니골 지역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업체 ‘3D이슈’는 주 4일제와 재택근무를 앞세워 더블린에 살던 정보기술(IT) 업계 인재를 속속 끌어들였다. 파리 지하철에도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남동부 보르도 지역 기업의 구인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세상이 가져온 풍경이다.
세계적 대기업들은 사무실 면적 또한 속속 줄이고 있다. 영국 HSBC는 기존 사무실 면적의 40%를 줄이기로 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 역시 직원 100명당 평균 60석의 좌석만 유지하기로 했다. ‘줌’ 같은 단순 화상회의를 넘어 가상현실(VR), 3차원(3D) 기술을 이용한 업무도 빠르게 늘고 있다.
‘노동의 소멸’ 우려도
원격 근무의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제네바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알렉산드로 씨는 “재택근무를 오래하다 보니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오히려 더 불분명해졌다. 집에서 일하니까 효율성이 떨어져서 오히려 사무실로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 전문 컨설팅업체 리스맨에 따르면 20대 직장인의 72%가 “집이 좁아 업무 전용 공간을 마련하기 힘들다. 또 사회적 친목을 위해서라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로 동료와의 협력 및 토론 기회가 사라지고 집단지성을 통한 혁신 또한 감소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재택근무에 따른 사생활 침해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유럽 회사는 웹캠, 원격 접속을 통한 재택근무자 업무 측정을 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적절한 ‘중간점’을 찾자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시사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일부는 사무실에서, 일부는 집에서, 일부는 또 다른 곳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일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네바에서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