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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호텔방엔 몰카가 있을까

입력 | 2021-06-24 03:00:00


고려호텔과 더불어 평양의 양대 고급 호텔로 꼽히는 양각도호텔(가운데). 2016년 1월 이 호텔에 투숙한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는 도청 시설이 있는 5층에 갔다가 체포됐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대다수 사람들은 북한 호텔에 묵으면 도청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없어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령 “나 같은 사람도 도청할까” “수천 명의 관광객이 한꺼번에 가도 다 도청이 가능할까” “몰래카메라(몰카)는 없을까” 등의 의문을 제기한다.

남과 북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엔 ‘귀때기’라는 도청 전문가가 등장한다. 귀때기란 단어는 처음 들었지만 북에 도청 전담 조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국가보위성 화학처가 도청을 담당한다.

도청 담당 부서 명칭이 왜 화학처인지 의아한 생각도 든다. 요즘 화학무기를 쓸 일이 없으니 주요 임무가 폭발물 제거와 도청 업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직접 도청도 하지만 특정 보위원이 요청하면 도청 장비를 제공하거나 감시 대상이나 기관에 도청 장비만 설치하기도 한다.

북한의 모든 호텔에는 화학처 소속 보위원이 최소 한 명씩은 상주해 있다. 고려호텔이나 양각도호텔처럼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엔 여러 명이 있다. 그러니 평양 호텔에는 무조건 방마다 도청기가 있다고 보면 된다. 모든 대화가 도청 또는 녹음되는 것이다.

2016년 1월 관광차 방북해 양각도호텔에 투숙하던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는 호텔 5층에 걸린 선전 문구를 떼어냈다가 체포돼 목숨을 잃었다. 웜비어 방북 이전부터 양각도호텔 5층은 외국인 사이에서 유명했다. 호텔 엘리베이터에 5층 버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계단을 통해 5층을 몰래 탐험하며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웜비어 역시 이 미스터리한 공포의 5층을 탐험한 뒤 기념으로 선전 문구를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5층에 보위성 화학처 소속 도청 담당 보위원들이 상주해 있다.

북한 호텔에는 몰카도 설치돼 있을까. 욕실에 설치된 몰카는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그런데 도청기는 모든 방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몰카는 투숙객의 중요도에 따라 설치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몰카 찾아내는 여러 방법이 나오는데, 이 중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서 찾는 방법이 가장 많다. 하지만 북에선 휴대전화를 압수당할 수도 있으니 다른 방법을 파악해 갈 필요가 있다.

방마다 몰카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가 투숙객에 대한 최후의 배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몰카를 대량으로 구매해 왔다면 당연히 설치가 됐을 것인데, 다행히 북한이 운영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은 자력갱생하라’는 것이라 몰카 살 돈도 보위성에서 벌어야 한다. 그런데 담당자들 처지에선 굳이 막대한 외화를 들여 몰카까지 사다가 모든 호텔방에 설치할 동기부여가 떨어진다. 솔직히 그럴 돈이 있으면 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보위성에는 화학처 외에 감청을 담당하는 부서가 또 있다. 보위성 11국이다. 두 부서의 임무는 다르다. 화학처가 국내 도청을 담당한다면 11국은 외국과의 연계를 적발하는 부서다. 탈북민이 북에 전화를 할 때 이를 적발하는 담당 부서가 바로 11국이다. 이 부서는 중요성 때문인지 당국이 비싼 장비를 많이 수입해 공급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독일 등에서 최첨단 전파탐지기를 대거 구입해 북-중 국경에 엄청 깔아놓았다. 질도 좋은 데다 숫자까지 많으니 최근엔 한국과 통화하면 5분 안에 보위원들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과 통화하려고 몇 시간씩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난해부터는 코로나를 핑계로 이동까지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경 주민들 속에선 보위성 탐지기가 통화 내용까지 도청한다고 소문났다. 이건 겁을 주느라 보위성에서 일부러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특정 집에서 몇 시에 통화가 이뤄진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지향성 안테나로 조준해 통화까지 잡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어쩌다 적발한 사례를 소문으로 퍼뜨려 공포를 준다.

최근 김정은은 외부와 연계되는 선을 찾는 데 어느 때보다 관심을 쏟고 있다. 보위성도 김정은이 관심을 기울일 때 공을 세워야 크게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보위원들이 평소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던 송금 브로커들을 불러 과거의 죄를 용서해준다며 이중첩자 활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탈북민들에게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때는 연락을 끊는 것이 최선이다. 김정은이 이걸 노렸다면 당분간은 성공한 셈이다. 다만 얼마나 오래 막을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