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19〉형체, 그림자, 정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끝’에서 자신의 몸뚱이로부터 잘려진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분리된 자아와의 대화라는 상상력은 일찍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 3수로 이루어진 시의 일부다. 도연명 이전에도 형체와 정신의 관계를 말한 경우가 있지만, 시인은 여기에 그림자를 추가한 점이 이채롭다. 생명의 유한성을 주제로 형체가 그림자에게 말하고, 그림자가 형체에게 답하며, 정신이 미혹된 바를 풀어준다. 정신은 술 마시는 것도 해롭고 이름 남기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도 없다며, 자연의 조화에 맡겨 죽음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말라고 권면한다.
도연명이 많은 시에서 생사 문제를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형체·그림자·정신의 말을 인생이 성숙해가는 단계로 받아들인다면(중국의 중국문학연구자 후부구이·胡不歸), 죽음이 더 이상 터부로 삼을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죽음은 삶의 윤곽을 보여주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이유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결국 삶의 이면이기도 하다. 죽음을 과도하게 염려하기보다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