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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년 전에도 한반도에 코로나가 왔었다고?

입력 | 2021-06-25 03:00:00

동아시아 인구집단 유전체 분석
치명적 호흡기 감염병 흔적 찾아
미래의 감염병 식별하는 데 도움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에 침투한 뒤 세포의 유전체가 단백질을 만드는 공정을 이용해 자신을 복제한다. 유전체에서 이 흔적을 추적하면 과거에 어떤 감염병이 유행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제공


2만 년 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살던 인류 조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매우 유사한 치명적인 호흡기 감염병을 앓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키릴 알렉산드로프 호주 퀸즐랜드공대 교수와 데이비드 에너드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동아시아에 사는 인구 집단의 유전체(게놈)에서 약 2만 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침입했던 흔적을 찾았다고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24일자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동안 유발한 세 차례 대규모 감염병이 아시아에서 시작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2002년 중국에서, 코로나19도 2019년 말 중국에서 처음 집단감염이 확인됐다. 2012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등장했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과(科)에 속하는 RNA(리보핵산) 바이러스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바이러스가 진화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에 침투한 뒤 세포를 속이고 세포의 유전체에서 단백질 제작 공정에 끼어 들어가 자신을 잔뜩 복제한 뒤 빠져나온다. 이때 바이러스의 복제를 도운 단백질은 마치 화석처럼 유전체에 흔적이 남는다.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인간의 유전체에 새겨지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바이러스와 상호 작용하는 단백질(VIPs)이라고 불렀다.

오랫동안 인간 유전체는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이런 단백질을 생성했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자손에게 전달됐다. 연구진은 5만 년 전부터 고대 바이러스가 인간의 유전체에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유전체에 남긴 유전자는 총 420개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관련 유전자는 332개, 사스와 메르스에 관련된 유전자는 88개다.

연구진은 ‘1000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해독된 1092명의 유전체에서 이들이 존재하는지 조사했다. 1000 게놈 프로젝트는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대륙별 26개 인구 집단의 유전체를 해독해 지역별, 개인별 차이를 조사한 인간 유전자 지도 작업이다.

연구진은 동아시아의 유전체 샘플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남긴 유전자 조각 42개를 확인했다. 다른 지역 유전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프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은 지금의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 대만에 해당한다”며 “최초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나타난 시기는 900세대 전에 해당하는 2만여 년 전으로 이 시기 동아시아 지역에서 코로나19와 유사한 감염병이 퍼졌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과거 감염병 유행에서 인체에 유입된 고대 바이러스 유전자가 현재 감염병과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에너드 교수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유전체를 변화시켜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킨 동인이기도 하다”며 “유전체에서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는 일은 향후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장기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 선임연구원은 “바이러스는 인간의 유전체에 침입해 돌연변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며 “이런 변이가 세대를 거듭해 계속 살아남은 것은 인류의 생존에 유리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