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창사 10주년 특집 ‘지구는 엄마다’ 내일 1부 방영
1년에 하루 섬 안 모든 전기 차단… 통행금지와 함께 아무 일도 못해
외국인 관광객도 숙소에만 있어야… 매일 신과 교감하는 주민들 삶과
자연과 환경에 미친 영향도 조명… 4년간 3개월씩 현지 머물며
촬영한 김해영 감독-김정홍 작가 “미리 이동해 텐트 치고 작업”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에게 1년이 며칠이냐고 물으면 364일이라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1년 중 하루는 모든 것이 멈추는 날이기 때문에 365일 중 하루를 뺀다. ‘녜피(Nyepi·바른 표기는 녀피)’라 불리는 이날은 힌두교력의 새해 첫날(3월 중 유동적)로 섬 전체의 모든 불이 꺼지고 통행이 금지되며 사람들도 외출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다. 발리인은 물론 관광객들도 예외 없이 녜피에는 네 가지 수칙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불 켜지 말 것, 일하지 말 것, 이동하지 말 것, 놀지 말 것. 서퍼들과 휴양객들로 1년 내내 쉴 틈 없는 발리의 바다와 하늘이 하루 동안 쉬어가는 날이다.

김해영 감독(왼쪽), 김정홍 작가
24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김 감독은 “발리를 방문했을 때 녜피에 호텔 방에서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까만 도화지에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것같이 별이 빼곡하더라. 디스커버리, BBC를 찾아봤는데도 녜피를 다룬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건 특종이다’라는 생각에 제작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채널A 창사 1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지구는 엄마다’에서 1년 중 하루 모든 활동을 멈추는 날인 발리섬의 ‘녜피’ 때 김해영 감독이 밤하늘을 촬영한 장면. 채널A 제공
발리 주민들이 신에게 바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기도하는 모습. 채널A 제공
녜피는 발리의 바다와 하늘이 쉬는 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끊기고 외출도 할 수 없는, ‘자가격리’ 상태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기회를 갖는다. 김 작가는 “하루를 쉰다고 해서 지구가 말끔히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녜피는 인간이 하루 동안 자신을 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1년 중 하루 동안 명상을 하며 나를 만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그 해결 방안 중 하나가 녜피가 될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당신의 녜피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박영석 대장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잠 좀 자자. 잠을 자야 꿈을 꾸지’라는 말을 하셨다. 발리에서 만난 사제도 똑같은 말을 했다.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꿈을 꿉니다’라고 하더라”며 “녜피는 꿈꾸기 위한 준비 단계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