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조남주 지음/368쪽·1만4000원·민음사

작가 조남주는 첫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서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페미니즘 문학의 범위를 넓힌다. 주인공은 다른 여성의 손을 잡고 이해하며 개인의 고통을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16년 출간한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으로 문학계에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킨 조남주(사진)가 첫 소설집을 내놓았다. 100만 부 이상 팔린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을 비판하는 조남주 문학의 특성은 여전하다. 다만 ‘82년생 김지영’이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면, 이번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은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쳐 여성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몰래카메라 사건의 피해자의 엄마와 언니가 사건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중년인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으니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청년인 언니는 “상습범은 봐줄 수 없다”고 반박한다.
여성 문제에 대한 천착은 여전하다. 한 여성이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현남 오빠에게’는 권력적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통제해 본인의 생각에 동조하게끔 만드는 가스라이팅이 벌어진 연애 문제를 다룬다. 중소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이 등장하는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직장 내 성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나는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