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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경매에 나온 나폴레옹 사망보고, 진품인걸 어떻게 알까

입력 | 2021-06-26 03:00:00

◇역사 사냥꾼/네이선 라브 외 1명 지음·/김병화 옮김/364쪽·1만8000원·에포크




역사 인물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와 사실들은 종종 해묵은 서류 꾸러미 속에서 발견돼 전 세계 뉴스 매체에 소개된다. 에포크 제공

희귀문서 거래 전문가인 저자가 한 수집가의 유품들이 출품된 미국 크리스티 경매장을 찾았다. 상자에 마구잡이로 담긴 문서들이 보였다. 옛 종이를 훑던 저자의 손이 순간 멈췄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글씨로 영국 왕에게 구출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더 놀라운 문서도 나왔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알리는 서류와 해부 보고서였다.

경매는 6000달러에서 시작됐다. 아무도 문서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굴을 보이지 않은 전화 입찰자가 높은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격은 4만, 5만 달러를 넘어섰고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자는 문서를 손에 넣었을까.

몇 g에 불과한 옛 문서에는 세상을 바꾼 순간뿐 아니라 유명인의 작업 스타일, 성품까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고문헌 수집에는 상징과 의미에 대한 깊고 심오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해가 ‘진품 명품’을 찾아내는 열쇠라며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소개한다.

예컨대 유명인의 필적이라고 다 귀한 건 아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모든 법안을 13개 주에 각각 서명해 보냈다. 이 중 첫 번째 문서를 구별해낸 이가 짜릿한 성공을 맛봤다. 저자의 아버지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취미 겸 두 번째 직업은 AP통신 파리특파원을 지낸 아들이 이어받았다.

샤를 드 스퇴방의 유화 ‘나폴레옹의 죽음’(1828년)과 나폴레옹의 죽음을 프랑스 정부에 소상히 보고한 문서. 에포크 제공

나폴레옹의 육필은 많지만 저자는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을 명령하는 편지를 찾아내 높은 값에 되팔 수 있었다. 깊은 역사지식에 외국어 실력까지 동반돼야 가능한 일이다. 유명인사가 쓴 문서 중에서도 글쓴이의 특성이 잘 드러날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중 동생 오빌 라이트의 편지들 가운데 그가 ‘새로부터 비행의 비밀을 배우는 것은 마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쓴 것은 더 각별한 가치를 지닌다.

문서 출처가 신뢰할 만한지도 중요하다. 유명인의 직계 후손이 조상의 문서를 공개한다면 신뢰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오는 가품(假品)도 있다.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자동 서명 기계를 사용했다. 2개 이상 문서의 서명이 완전히 같다면 기계로 한 서명이다. 비서가 대신 서명하게 한 대통령도 있었다.

문서 수집은 위조 전문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위조가 조지프 코우지나 로버트스프링이 남긴 가짜 문서는 지금도 여러 수집가의 손에 모셔져 있다. 위조가도 고유의 스타일이 있다. 코우지는 끝까지 링컨의 서명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다. 한두 세기 전 옛 종이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여기 새 잉크로 글을 쓰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여 가짜 문서를 구분할 수 있다.

때로는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저자는 존 F 케네디 암살 직후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오간 대화를 담은 녹음테이프를 입수했다. 약 40분 분량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 국립기록보관소가 이걸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법률자문가는 ‘정부 압력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저자가 입수한 테이프는 똑같은 내용이 담긴 두 개였고, 문제는 만족스럽게 해결됐다.

각 장마다 흥미로운 일화가 기습하듯 튀어나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유럽 얘기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독립한 지 250년이 채 안 된 미국 문헌 얘기다. 마지막 왕조의 역사만 그 두 배 길이인 우리도 풍성한 고문헌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비화들도 이렇게 흥미롭게 묶여 나오길 기대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