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필요없다” 젊은층 목소리 확산에 각국 군주들 몸 낮추기
최근 22억 원의 용돈을 반납한 네덜란드 왕위 계승자 카타리나아말리아 공주와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막시마 왕비, 알렉시아 공주와 아리아 공주(왼쪽부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주제 폐지 여론 또한 상당하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왕실을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왕실모독죄가 있을 정도로 군주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하는 태국에서조차 밀레니얼세대들이 “우리에게 왕은 필요 없다”며 반정부 시위에 나서고 있다.
○ 왕실의 구조조정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실비아 왕비(앞줄 가운데), 왕위 계승 1순위인 빅토리아 왕세녀(앞줄 오른쪽)를 비롯한 1남 2녀 및 그 배우자, 손주들과 함께한 모습.
스웨덴 왕실은 줄리안이 태어난 뒤 아기의 사진도 단 1장만 공개했다. 8월 세례식 또한 비공개로 치러진다. 최근까지도 왕실 일가의 세례식을 공영 SVT방송에서 대대적으로 생중계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버지와의 절연을 포함한 강도 높은 왕실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왼쪽에서 두 번째)과 레티시아 왕비, 아스투리아스 왕세녀(왼쪽)와 소피아 공주(오른쪽).
그 역시 왕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왕실 구성원을 본인 부부와 딸 둘, 부친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83)과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83)로 제한했다. 엘레나 공주(58)와 크리스티나 공주(56) 등 누나 2명, 누나의 배우자와 자녀, 사촌 등에게 제공했던 혜택은 모조리 없앴다. 지난해 3월에는 전직 국왕에게 지급하는 연금 20만 달러도 없앴다.
현재 스페인과 스위스 양국 모두의 사법 수사를 받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지난해 8월 아랍에미리트(UAE)로 사실상 망명했다.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 또한 탈세와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 이로 인해 한때 70%를 웃돌던 군주제 지지 여론이 지난해 한때 40%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코로나19로 80세 생일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홀로 생일을 보낸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수수한 모습으로 왕실 직원의 축하를 받고 있다. 덴마크 왕실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해 4월 모나코 왕실 또한 “코로나19로 왕실 재정의 40%를 감축하기로 했다”며 연 예산을 기존 1320만 유로(약 178억 원)에서 800만 유로(약 108억 원)로 줄였다.
○ 젊은 층의 군주제 반감 상당
태국은 2016년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69)의 즉위 후 군주제에 대한 젊은 층의 반감이 특히 커진 나라로 꼽힌다. 그의 부친은 70년간의 재위 기간 내내 ‘생불(生佛)’로 불릴 만큼 국민의 절대적 존경과 지지를 받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1927∼2016). 반면 와치랄롱꼰 국왕은 수백억 원이 들어간 초호화 대관식을 열었다. 4번 결혼했고 여러 내연녀를 둔 복잡한 사생활 또한 비판받고 있다. 이에 상당수 젊은이들은 지난해부터 ‘왕실 개혁’ 등을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과격파는 군주제 폐지, 국왕 퇴위 등을 거론한다. 푸미폰 전 국왕에 대한 향수가 강한 장노년층과 다른 점이다.
영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군주제 폐지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4세 영국인의 31%만이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81%가 군주제를 찬성한 것과 대조적이다.
헬스트레이너 남편 둔 왕세녀… 미혼모와 결혼한 왕세자
왕실 인기 좌지우지하는 왕족 혼사몇십 년 전만 해도 각국 왕족들은 대부분 같은 왕족 혹은 귀족 출신 인사와 결혼했다. 최근 일반인과의 결혼이 늘면서 왕족 혼사 역시 왕실 인기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인과 결혼한 후 잘 사는 왕족의 모습은 군주제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였던 다니엘 베스틀링(48)과 8년간 연애 끝에 결혼한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 부부는 동네 이웃 같은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유지해 국민들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배우자의 논란 있는 과거는 여론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카타리나아말리아 공주의 부모인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54)과 막시마 왕비(50) 부부가 대표적이다. 막시마 왕비의 부친은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농업장관을 지낸 호르헤 소레기에타다. ‘독재자의 딸을 용납할 수 없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부부는 2002년 결혼식과 2013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의 즉위식에 모두 소레기에타를 초청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84)의 아들로 현재 대리청정 중인 호콘 왕세자(48)는 2001년 메테마리트 왕세자빈(48)과 결혼했다. 왕세자빈이 마피아 두목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둔 미혼모였던 데다 마약 복용 사실까지 알려져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당시 90%를 넘나들었던 왕실 지지율 또한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두 사람이 결혼 후 두 자녀를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 여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여성 왕위 계승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일본 왕실의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왼쪽부터).
이는 세금이 고무로 가족의 ‘빚잔치’에 쓰일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남성 승계만 가능한 일본 왕실에서 공주는 결혼과 동시에 왕족 자격을 상실한다. 그 대신 지참금을 최대 1억5000만 엔(약 15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마코 공주가 결혼하면 그가 받을 지참금이 예비 시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 쓰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반대 여론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왕 또한 2월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하는 상황을 바란다”며 조카의 결혼에 부정적인 의사를 넌지시 드러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