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수사’ 때 야권이 만들고 ‘권력 수사’ 때 여권이 채웠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동아DB]
하루 전인 6월 22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윤석열 X파일을 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의혹, 처 관련 의혹, 장모 관련 의혹 등 3개 챕터로 의혹들을 정리해놓고 밑에 ‘이건 이렇게 공격할 필요가 있다’ ‘이건 예전에 해명된 거다’ 이런 식의 정치적 판단 내용까지 들어가 있더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날 방송에서 장 소장은 4·7 재보궐선거 때 생태탕집 주인 아들이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 씨를 봤다고 한 것에 빗댄 듯 “공장장님(김어준)이 원하면 생태탕집처럼 사흘 정도 시간을 달라. 그러면 여기서 다 까겠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법적으로 문제없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尹 장모 선고 일정에 맞춘 치고 빠지기?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사진 제공 · SBS]
문재인 정권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지렛대로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을 맹공격해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금했다. 만약 장 소장이 해명한 뉘앙스처럼 X파일을 정부 기관이 만들었다면 이 사건은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X파일 내용이 허위라면 명예훼손 등의 문제도 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송 대표, 장 소장은 X파일 내용은 밝히지 않고 그 존재만 부각한 후 논란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이러한 ‘치고 빠지기’는 7월 2일 윤 전 총장 장모 재판 선고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윤 전 총장 장모는 딸(김건희 씨)과 윤 전 총장이 혼인(2012)한 직후인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동업자 3명과 함께 요양병원(경기 파주시)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뒤늦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불구속 기소됐다. 먼저 기소된 동업자 중 1명은 징역 4년, 나머지 2명은 징역 2년6개월·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은 5월 31일 윤 전 총장 장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래서 “윤 전 총장 장모가 늦게 기소된 것은 사위 때문이다” “윤 전 총장 장모도 유죄를 선고받을 것이다”라는 예측이 있었다.
‘대호프로젝트’ 언급한 추미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캠프가 입주할 것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사무실 입구가 닫혀 있다. [뉴시스]
덧붙여 윤 전 총장 관련 파일은 야권이 먼저 만들었다는 시각이 적잖다. 특검(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경제공동체로 봤다. 또 청와대가 가져간 국정원 특활비를 국정원장이 자리 보전을 위해 대통령에게 바친 뇌물로 규정해 기소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윤 전 총장은 야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렇다 보니 여권이 야권이 만든 자료를 토대로 윤 전 총장 관련 자료를 쌓고 있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추-윤 배틀’이 한창이던 시절 ‘대호프로젝트’라는 것이 잠시 회자됐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과 주제만 알려지고 실제 내용은 없는 ‘뻥 계획’이라는 관측이 많은데, 추 전 장관이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3월 11일 추 전 장관은 페이스북에 “윤석열의 절친으로 알려진 석동현 변호사가 대호법무법인 대표다. 대호는 윤씨의 별칭이고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로 알려진 대호프로젝트를 연상케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윤 전 총장이 앞선 정권의 적폐를 수사할 땐 야권이 X파일을 만들고,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권력을 수사할 땐 여권이 X파일을 채웠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을 수사하면서 윤 전 총장은 야권 대권후보로 떠올랐는데 그때 회자된 것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그러니까 대호프로젝트다. 정반대 분석도 있다. 윤 전 총장은 원래 대권을 꿈꾸지 않았으니, 그를 사실상 야권 대권후보로 만든 것은 범여권이라는 견해다. 국민이 윤 전 총장을 대통령감으로 보려면 특정한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범여권이 이를 만들어줬다는 것.
지난해 6월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하며 윤 전 총장을 처음 후보군에 넣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30.8%), 이재명 경기도지사(15.6%)에 이어 3위(10.1%)를 기록했다. 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21대 국회의원이 된 홍준표 의원은 5.3%였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현역 검찰총장이 야권 차기 대선후보 1위를 꿰찬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때만 해도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올 것이라고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도리어 야권을 약화시키려고 윤 전 총장을 띄우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대선후보로 거명되는 것이 불편한 듯,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추-윤 배틀은 윤 전 총장 지지율을 높여 결국 그를 유력 대선후보로 만드는 요소가 됐다. 그러곤 윤 전 총장 장모 선고에 맞춰 X파일 논란이 등장했다.
親朴·親文, 한편?
‘윤석열 X파일’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는 재혼한 사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교통사고로 첫 부인을 잃었다. 현 부인인 질 바이든은 이혼 후 바이든 대통령과 재혼해 부부가 됐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질 바이든의 전남편은 영국 신문과 인터뷰에서 “두 사람의 불륜으로 내 가정이 파탄 났다. 바이든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주장했다.친(親)박근혜 계열 일각에선 “윤석열이 박근혜와 최순실을 경제공동체로 엮어 기소했다. 윤석열과 장모는 가족공동체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정치적 계산 때문에 여권이 손을 놓아도 이들은 X파일을 계속 내세울 수 있다. 이에 친문(친문재인)이 동조하면 친박과 친문이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된다. 정치는 ‘사실과 달리 갈 수 있는’ 생물(生物)이다. X파일 논란은 한국 정치사에 훗날 어떻게 기록될까.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9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