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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하게 통계 비틀어…靑 참모들, 얼마나 머리 쥐어짰을지”

입력 | 2021-06-28 03:00:00

[이진구 기자의 對話]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이진구 기자

《이달 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을 만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그의 대선 행보를 가늠하던 시기라 이 회동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떤 주제가 언급됐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윤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란 국회 연설로 스타 정치인이 됐고, 윤 전 총장은 윤 의원이 쓴 ‘정책의 배신’을 읽고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니까. 윤 의원은 24일 본보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하면 더 좋겠지만 정권이 바뀌면 임대차2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숙 의원은 “지난해 출간한 ‘정책의 배신’에 이어 최근 또 하나의 책(가제 ‘정치의 배신’)을 막 다 썼다”고 말했다. 국회에 와서 보니 이상한 정책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정치 때문이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라 차원의 큰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해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 말미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참느라 애를 쓰더라.

“내게 그런 면이 있는지 처음 알았는데… 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보통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되는데 국회에서 그럴 수는 없어서 억지로 참다 보니 그 화가 다 손으로 간 것 같다. 수전증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옆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있었으면 한 대 때렸을 것 같던데.) “하하하, 설마…. 카메라에 안 잡힐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떠는 게 다 나오더라.”

―연설은 공감을 얻었지만 당신은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일반 세입자 같은 상황에 처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집주인에 따라 다르겠지요?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정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개인적인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책의 부작용을 굉장히 깊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월세, 전세를 거쳐 내 집을 마련해서… 세를 살아 본 사람들은 다 느낄 수 있다. 세 안 살아 봤나?” (독립도 못해서….) “음….”

―당신은 임대차보호법 덕을 안 보나.

“2년은 더 보장됐으니까 당장은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보장기간이) 2년이냐, 4년이냐가 아니라 새로 집을 구할 때 매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삼모사도 아니고 사람이 2년만 더 살고 죽는 게 아니지 않나. 당장 2년만 보장되고 그 뒤에는 매물이 없어서 갈 곳이 없다면 그게 말이 되는 정책인가?” (지역구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초구인데 어떻게 전세를 구했나.) “아이고,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반포는 너무 비싸서 못 가고 방배동 나 홀로 아파트에 들어갔다. 서러운 하루였다.” (성북구에 있는 집은 전세를 줬다던데.) “35년 된 아파트인데 집 산 지 8년 동안 천 원도 안 오르다가 2018년인가 보니까 1억 올랐다. 너무 좋아서 친구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다’고 했더니 ‘희숙아, 우리 집은 10억 올랐어’라고 하더라.” (친구는 어디?) “반포….”

―그러면 임대차보호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 번 만든 법을 없애는 것은 아주 나쁜 수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국민들이 빨리 적응해서 익숙해지는 게 좋지 않나 생각도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될 것 같다. 1년 가까이 됐는데 시장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미 매물이 말라서… 그러면 (법을) 없애야지. 지금 정부가 없애 주면 좋지만 안 된다면 정권이 바뀐 뒤라도 없애야 한다. 지금 집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정도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집이 아예 없으니까.”

―폐지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거니까…. 제일 중요한 게 계약갱신청구권인데 우리가 생각했던 부작용보다 더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 법 때문에 매물이 없어지는 걸 걱정했는데 그것도 나타나지만 더한 것은… 갱신청구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가격을 엄청 올려 세입자를 쫓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디나 늘 독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굉장히 다양한 유형의 문제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데 어이없는 것은… 원래 우리나라 평균 임대 기간이 3년 정도였다는 점이다. 나도 그랬지만 보통 전세 줄 때 한 번은 더 갱신하니까. 그런데 지금 이 난리를 쳐서 모든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올 신년사에 대해 “부동산 메시지 왜곡이 위험 수준”이라고 지적했는데….


“현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 주택 공급을 많이 늘렸는데도 집값이 급증한 건 예상치 못한 가구수 증가 때문이고, 2020년 가구수 증가가 61만에 이른다는 게 요지다. 그러면서 2019년은 그 전년에 비해 2만 가구가 늘었을 뿐인데, 2020년은 2019년에 비해 18만 가구가 더 늘었다고 했다.” (61만은 뭐고 18만은 뭔가? 2020년 같은 해에 늘어난 가구수가 왜 다른가.) “하… 18만이 어떻게 나온 건지 알면 기가 막힐 거다. 2019년(12월 기준)은 2248만 가구. 2020년은 2309만 가구니까 61만(정확히는 61만1642) 가구가 늘었다. 2018년에서 2019년에는 43만 가구(정확히는 43만8519)가 늘었고. 증가분인 61만에서 43만을 뺀 17만3123을 무조건 올림 해 18만을 만들었다. 2만 가구도 2018∼2019년 증가분(43만8519)에서 2017∼2018년 증가분(41만96)을 뺀 2만8450가구를 무조건 버려 만든 거고.”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12월 기준)로 작년 전국 가구수는 2309만3108, 2019년 2248만1466, 2018년 2204만2947, 2017년 2163만2851이다.

―그럼 대통령이 언급한 18만, 2만 가구는 실제 늘어난 숫자가 아니란 뜻인가.


“아무 의미 없다. 앞서 말했듯 집값 급등이 가구수 증가 때문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다 보니 미분의 미분을 한 거다. 2만에서 18만으로 늘었다고 하면 9배나 확 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43만 가구에서 61만 가구로 늘었다고 하면 절대 수는 많아도 확 늘었다는 느낌은 적고.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자의적 올림, 내림을 한 거다. 정말 지질하게 통계를 비튼 건데…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짠하다. 이런 걸 생각해 내느라 청와대 참모들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짰을지 생각하면….” (들통날줄 몰랐을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겠지. 나처럼 집요한 사람이 많지는 않으니까.”

―기본소득, 재산비례 벌금제, 청년 세계여행비 1000만 원 등 이재명 경기지사가 뭘 얘기할 때마다 신랄하게 지적하던데….

“선거 때는 선에서 좀 벗어나는 얘기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벗어난 정도가 워낙 남다르니까. 그분이 민주당 내 경선 연기론자들에게 ‘한때 가짜 약장수들이 기기묘묘한 묘기를 부려서 가짜 약을 팔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더라. 그런데 각종 정책에 대한 이 지사 말을 들으면 나는 본인이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상식에서 벗어난 기묘한 말에 홀리지 않으려면 누군가 그 말이 얼마나 정상에서 벗어난 건지 알려줘야 하지 않나. 워낙 기묘한 말을 많이 해서 덩달아 내 지적도 많아진 것뿐이다. 노벨상 수상자 저서 공방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거고.”

※이 지사는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바네르지·뒤플로 교수 부부의 책(‘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근거로 전 국민에게 연 10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책은 읽어 보셨냐”고 저격했다.

―그 책이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당신은 이미 읽었나? 이 지사 주장이 나온 뒤에 찾아본 건가.

“작년 5월에 국내에 출간됐을 때 바로 읽었다. 이 지사가 바네르지 교수 책을 기본소득의 근거로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유승민 전 의원과 공방을 벌였기 때문에 내가 낄 자리도 아니고. 그런데 유 전 의원에게 ‘노벨상 수상자와 뭘 하셨는지는 몰라도 다선 국회의원 중 누구를 믿어야 하냐’고 하는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책의 요지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보편 기본소득이 유용할 수 있지만, 선진국은 일자리가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성취감, 존엄성, 자아계발 등 삶의 의미를 주는 주축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거다. 초록이라도 읽어 보고 말을 하든지.”

―남들은 윤 전 총장을 못 만나서 안달이고, 만난 뒤에 자랑 삼아 부풀려 말하기도 하는데 당신은 왜 한마디도 안한 건가.

“기자들이 굉장히 궁금해하기는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느냐, 어디서 만났느냐, 뭘 먹었느냐 등등. 근데 정말 한마디도 안 했다. 나는 정치 초보다. 그런 내가 윤 전 총장에 대해 서로 한 말을 전하거나, 인물평을 하면…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고, 의도하지도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예 입을 닫았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