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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학 초석 닦은 고유섭 선생 아시나요”

입력 | 2021-06-28 03:00:00

고향 인천서 타계 77주기 추모 사업
생가 인근 ‘우현문갤러리’가 구심점
내달 8∼28일 특별전시 진행돼
생애 조명 애니 상영… 거리 미술제도




“서양 미술과 미학을 국내에 처음 전파하시고, 한국 미(美)를 정리하셨습니다. 우현 선생님이 한국 근대미술의 출발이자 시작이지요.”

26일 경인전철 동인천역 맞은편 골목에 있는 인천 용동 큰우물(인천 민속문화재) 앞마당에서 한국 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1905∼1944·사진)의 추모제가 열렸다. 우현의 기일인 이날 그의 추모비가 있는 생가 터에서 원로 화가 박송우 씨(80)와 10여 명이 모여 헌화에 이어 묵념, 추모인사 등 간단한 제례를 올렸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요절한 우현은 한국미의 특징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성의 계획’ ‘구수한 큰 맛’으로 규정한 한국 최초의 미학자이면서도 투철한 민족운동가로 꼽힌다. 3·1운동 때 태극기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시위에 참여했다 소년의 몸으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보성고보에 다닐 때엔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문예부에서 문학기량을 닦아 1925년 동아일보에 경인선의 풍경을 노래한 시조 ‘경인팔경(京仁八景)’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성제대(서울대 전신) 예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우현은 11년간 개성박물관장을 지내면서 타계하는 날까지 전국의 유적지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금동미륵반가상의 고찰’ ‘고려의 불사(佛寺) 건축’ ‘조선 탑파개설’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수많은 논문을 썼다. 그는 “경주에서 문무왕의 유적을 찾아보라”는 유언을 황수영(전 동국대 총장) 진홍섭(전 이화여대 교수)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개성 3걸’ 제자들에게 남겨 문무왕 수중릉 발굴 작업을 이끌어냈다.

한국 미학의 초석을 닦은 우현의 업적이 이처럼 크고 제자들도 많이 길러냈지만 그를 기리는 작은 기념관조차 고향을 비롯해 전국 어디에도 없는 상태다. 인천에서 우현 77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한 독지가가 지난해 우현 생가 인근의 5층 상가건물을 사들여 우현기념관, 전시실, 공방, 교육 실습실 등을 꾸미고 있다. ‘우현문갤러리’로 탈바꿈한 상가건물이 우현 추모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2, 3층 전시실에서는 다음 달 8∼28일 우현을 기리는 특별 전시회가 진행된다. 우현이 다닌 창영초교 출신의 화가 홍용선 씨(78)가 우현 관련 자료 수집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첫 전시 기획자로 나섰다. 우현과 인연을 맺은 30여 명의 화가가 릴레이 전시회에 나설 예정이다. 또 26일 1층 우현기념관에선 향토연구가, 출판사 대표 등 8명을 중심으로 ‘우현 공부모임’이 시작됐다. 이날 향토연구가 김창수 씨가 우현 발자취를 소개하는 강연을 한 뒤 토론을 벌였다.

우현문갤러리는 산학협동 형태로 우현 생애를 조명하는 1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상설 상영하기로 했다. 우현의 미학정신을 잇는 문화예술 행사도 추진되고 있다. 다음 달 8일 우현문갤러리에서 인천지역의 공공 및 사설 갤러리들이 공동 미술제를 여는 문제를 협의한다. 또 우현 생가 주변의 중구 우현로 애관극장∼배다리에 있는 카페, 식당이 함께하는 거리 미술제를 선보이려 한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