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수많은 시사회를 다녔지만 유독 잊을 수 없는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시사회에서는 보통 영화 본편이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뜨기 무섭게 상영관을 바삐 퇴장하는 사람들, 개념 없이 좌석 앞에 서서 남의 시야를 가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2006년 국내 개봉한 ‘브로크백 마운틴’(사진)의 언론·배급 시사회는 달랐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던 관중이 마치 한마음이 되었던 듯 “하아” 하고 일제히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리안(李安)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흔들림을 거의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미진(微震)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감정의 쓰나미(지진해일)를 만들어낸다. 작가 애니 프루가 쓴 단편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는 1963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두 고교 중퇴자 에니스 델 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런홀)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시작한다. 초면에 카우보이모자를 눌러 쓰고 서로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던 두 남자는 곧 2인 1조가 돼서 외딴 산속 아름답지만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같이 일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둘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계획보다 한 달 일찍 산에서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헤어짐이 아쉬워 시작한 장난이 감정적 주먹질까지 가게 된다. 덤덤한 척 헤어진 에니스는 잭의 트럭이 사라지자 건물 사이로 숨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꺽꺽 운다.
200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이며 황금사자상을 탔고, 제7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때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을 비롯한 유수 영화상들을 탄 작품이다.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동성애 혐오증이 적지 않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작품의 완성도 덕분에 많은 것을 넘어섰다. 얼마 남지 않은 6월 성소수자의 달 의미를 되새기며 볼만하겠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