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후면 미국 독립기념일입니다. 영어로는 ‘인디펜던스 데이’라고 하죠.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공휴일도 개명해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대체공휴일 문제로 뜨겁지만 미국은 조금 다른 앵글의 ‘공휴일 고민’이라 할 수 있죠.
미국의 큰 명절인 독립기념일. 미국인들은 이날 야유회를 가거나 정원에서 바비큐 그릴에 핫도그를 구워먹고, 저녁때가 되면 인근 공원에 가서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지저벨)
문제는 공휴일의 대부분이 폭력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물들을 기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국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폭력적 면모를 갖고 있지만 짧은 기간 안에 국가를 세우고 분열을 잠재웠던 미국은 폭력의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영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인 미국 동부 13개 식민지 주민 대표들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에 서명한다. 이 때부터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피스데이’ 뒤에 ‘원’이 붙는 것은 두루뭉술한 의미의 ‘피스데이’는 웬만한 곳에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다목적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피스데이 투’도 있고, ‘쓰리’도 있습니다.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전몰자 추도기념일·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투,’ ‘마틴 루터 킹 데이(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1월 세 번째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쓰리‘라는 이름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킹 목사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으므로 그의 기념일은 개명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특정 인물을 기리는 날은 결국 개인 우상화 위험이 있다 해서 ’피스데이‘군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개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 날은 ’콜럼버스 데이(10월 두 번째 주 월요일)‘입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1937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많은 지자체들이 회의를 거쳐 ’콜럼버스 데이‘라고 하지 않고 ’인디지너스 피플스 데이(원주민의 날)‘라고 부를 것을 정식 결의했습니다.
1992년 미국 영화 ‘1492: 천국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 한국에서는 ‘1492: 콜럼버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탐험가 콜럼버스와 원주민의 관계를 미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엠파이어)
최근 뉴저지 주 랜돌프 고교 사례는 휴일 개명이 얼마나 쉽지 않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총 학생수 1500여명의 이 작은 학교가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올해 학사 일정을 공개하면서 공휴일 명칭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공휴일 명칭을 쓸 경우 누군가의 반발을 살 것을 우려해 아예 생략하고, ’학교 문 닫는 날(School Closed)‘ ’쉬는 날(Days Off)‘ 등의 큰 제목 아래로 날짜만 공고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봐온 공휴일 명칭이 사라진 것에 반발한 학부모들이 생략 결정을 내린 학교 이사회 퇴진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돌입하면서 학교가 이념 대결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 뉴저지 주 랜돌프 고교는 학사 일정을 공개하면서 ‘학교 문 닫는 날(School Closed)’이라는 제목 아래 공휴일 날짜만을 공개했다(왼쪽). 오른쪽은 원래 공개하려면 휴일 명칭이 들어간 원본. (자료: MSN)
미 뉴저지 주 랜돌프 고교는 학사 일정을 공개하면서 ‘학교 문 닫는 날(School Closed)’이라는 제목 아래 공휴일 날짜만을 공개했다(왼쪽). 오른쪽은 원래 공개하려면 휴일 명칭이 들어간 원본. (자료: MSN)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