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달 6일(현지 시간) 미국 공군 수송기를 타고 대만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도착한 미 상원의원단의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우자오셰 대만 외교장관, 크리스토퍼 쿤스(민주·델라웨어), 태미 더크워스(민주·일리노이), 댄 설리번(공화·알래스카) 미 상원의원. 이들은 당시 차이잉원 총통 등 대만 고위 관계자들을 잇달아 면담했고 코로나19 백신 지원 또한 약속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날 청문회장은 중국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 의원들은 당적에 관계없이 대중 강경책을 주문했고 증인들도 동조했다. 포틴저 전 부보좌관은 의원들에게 “중국은 세계 공급망을 지배해 아시아 내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전 세계의 규범까지 바꾸려 하고 있다”며 “이에 맞설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과의 경쟁에 필요한 미국 내 기술 투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역량 강화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얼마나 신속하게 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팀 스콧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또한 “(미국인이) 공산주의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지난 200년간 누려온 꿈을 누릴 기회를 잃는다”고 일갈했다. 포틴저 전 부보좌관 역시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중국산 제품의 구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비둘기파’ 찾기 어려운 美의회
상원을 장악한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는 “우리가 (중국을 상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의회 1인자’로 군림할 때부터 대중 강경파로 유명했다. 매코널의 부인은 대만계 일레인 차오 전 교통장관이다. 톰 코튼(공화·아칸소) 마코 루비오(공화·플로리다) 조시 홀리(공화·미주리) 등도 상원 내 대중 매파로 꼽힌다.
하원에서는 크리스 스미스 의원(공화·뉴저지)이 유명하다. 의회 내 초당적 인권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인 그는 수시로 중국의 인권 탄압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해 왔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내놓은 곳도 스미스 의원이 진행한 청문회였다.
올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민 등 국내 주요 정책에서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색채를 지워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국 정책에 관해서만은 전 정권의 정책을 충실히 계승할 뿐 아니라 더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년간 230개 법안깴결의안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왼쪽)이 참석한 지난달 8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lee@donga.com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첫 번째 결과물이 ‘2021 전략적 경쟁 법안’이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민주·뉴저지)이 4월 발의한 이 법안은 중국이 민감해하는 홍콩, 신장위구르 문제를 상세히 언급했고 대만에 대해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필수적 부분”이라며 대놓고 편들었다. 상무위, 은행위, 금융위 등도 비슷한 법안을 속속 내놓으며 동참했다.
각 상임위가 작성한 법안들은 지난달 8일 ‘미국 혁신과 경쟁 법안’이란 통합법으로 재탄생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로봇 개발 등 중국과 기술 경쟁을 벌이는 첨단과학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총 2500억 달러(약 280조 원)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분량이 2376쪽에 달한다.
하원에서는 그레고리 믹스 외교위원장이 5월 ‘미국의 글로벌 지도력과 관여 보장 법안(EAGLE·Ensuring American Global Leadership and Engagement Act)’이란 유사 법안을 발의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국무부 자원 및 인력 배치를 늘리도록 했고, 홍콩 인권 문제 대응 필요성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호주 등과의 협력 필요성도 언급했다.
대만계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3월 인준 청문회에서 ‘반대 0표’를 받은 것도 상징적이다. 그는 상원 전체 100표 중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2명을 빼고 찬성 98표를 받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국내 정치에선 사사건건 대립할지언정 ‘중국 견제’란 국익 앞에서 똘똘 뭉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백신 지원 약속한 의원들
상당수 의원은 상임위원회 차원의 입법과 별개로 미국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 금지, 신장위구르 인권 침해 제재,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보이콧 관련 법안과 결의안 등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일부는 아예 ‘행동’에 나섰다.
상원은 지난달 초 중국 보란 듯 대만 방문 의원단을 구성해 이들을 타이베이로 보냈다. 태미 더크워스(민주·일리노이), 댄 설리번(공화·알래스카), 크리스토퍼 쿤스(민주·델라웨어) 의원이 미 공군 수송기로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 등을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만에 백신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대만의 뒤에 미국이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의원들의 중국 관련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중국 전문가와 보좌관들도 곳곳에 포진했다. 포틴저 전 부보좌관과 마찬가지로 백인이지만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중국어 또한 능통한 사람이 적지 않다. 20년 넘게 중국을 담당해 왔다는 의회의 한 전문가는 “중국을 전담하지 않는 보좌관과 전문위원들도 요즘 중국 관련 내용만 들여다보는 분위기”라며 “중남미 전문가는 중국이 해당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속속들이 파악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