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이러니 작은 데다 우리와 별 관련 없는 녀석들은 찬밥 신세가 따로 없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무명’ 신세를 면치 못한다. 어쩌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소라게도 그중 하나인데, 사실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너무나 감탄스러운 장면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우리도 저러면 어떨까 싶은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이들이 소라게라는 이름을 얻은 건 소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게가 소라를 사냥한다고? 아니다. 녀석들은 껍데기를 좋아할 뿐이다. 단단한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기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휴대한다. 이동주택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소라 껍데기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문어나 베도라치들도 이 천혜의 요새를 확보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라게들은 물 밖 해변 모래사장을 서성이는데, 운 좋게 빈껍데기를 발견한다고 해도 몸에 맞지 않으면 허사다. 예를 들어 너무 크면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아쉽지만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까?
예를 들어 어떤 게가 괜찮은 빈집을 발견해 이사를 하고 있는데 그 옆을 지나던 다른 게가 보니 자신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것 같다 싶으면? 옆에서 기다린다. 조금만 있으면 공짜 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이곳을 지나던 또 다른 게가 보기에 대기자가 자기보다 좀 더 크다 싶으면? 역시 그 옆에서 또 기다린다. 이런 식으로 어느 틈엔가 줄이 생긴다. 여섯 마리가 줄 서 있는 걸 본 적도 있다.
과연 생각하는 뇌가 있을까 싶은 아주 작은 게들이 집을 얻으려고 나란히 줄 서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대대적인 집 물려받기가 끝나고 난 풍경도 참 인상적이다. 가장 마지막에 집을 물려받은 녀석이 남긴 가장 작은 껍데기 하나만 넓은 해변에 동그마니 놓여있다. 혹시 우리도 이럴 수 없을까? 요즘 들어 녀석들이 자꾸 생각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