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조기폐쇄 수사 8개월만에 대전지검 ‘白 배임교사 적용’ 주장 김오수 “수사심의위 소집” 제동…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배임 기소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2018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의 조기 폐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30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57)과 채희봉 전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55),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61)을 각각 기소했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의 수사 의뢰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8개월여 만에 원전 조기 폐쇄에 관여한 핵심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지난달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로 2일 수사팀이 교체되기 이틀 전이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정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수사팀이 주장해온 배임 혐의는 정 사장에게만 적용됐고, 공무원이었던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게다가 김오수 검찰총장은 백 전 장관을 정 사장에 대한 배임교사 혐의로 기소하자는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권으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면서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 기소 여부는 수사팀 교체 이후 결정하게 됐다. 2018년 수사심의위 제도 도입 이후 이번 사건까지 14차례 수사심의위 중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소집을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채 전 비서관과 공모해 2017년 11월 한국수력원자력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하는 등 원전 조기폐쇄를 압박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한수원은 내부적으로 “월성 1호기를 설계 수명까지 가동해야 하고 조기 폐쇄할 경우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백 전 장관 등의 압박을 받아 원전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김오수, ‘백운규 배임’ 기소 보류에… 법조계 “정부상대 손배소 차단”
수사팀 아닌 검사장 명의 보도자료
“수사심의위, 총장직권소집” 명시
대전지검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을 정부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수원 이사회의 가동 중단 의결을 이끌어내고, 이로 인해 회사에 1481억여 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정 사장을 기소했다. 다만 백 전 장관에 대한 배임교사는 수사심의위에 넘기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김 총장은 노 지검장에게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에 대해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으라고 지시했지만 수사팀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수사 검사가 아닌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가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데 최소 보름 정도가 걸린다는 이유였다. 김 총장이 결국 수사팀 교체 후 기소를 뭉개려는 것 아니냐고 본 것이다. 수사팀은 인사이동 전 이날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를 마무리하면서 양측의 입장을 배려한 합리적인 절충안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팀 교체 후에도 수사심의위는 기존 수사팀이 들어가기로 했다.
반면 이 같은 김 총장의 결정을 두고 검찰 안팎에선 “향후 정부를 상대로 제기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백 전 장관 등이 배임교사 혐의로 기소된다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로 손해를 본 민간 주주들이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가 인정될 경우 백 전 장관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등 수사가 청와대 윗선으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김 총장이 이를 차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