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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마블링? 스페인선 사육방식이 중요”

입력 | 2021-07-01 03:00:00

‘진짜 스페인은…’ 낸 문정훈 교수
스페인 시골마을 찾아 직접 확인한 품종-사육방식 다양성 상세히 정리
“어떻게 키웠는지 따라 등급 매겨… 취향의 시대 맞아 획일성 재고해야”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와인들로 빼곡한 본인 교수실 책상 앞에 서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소와 돼지가 사육되는 곳을 떠올려 보자. 좁은 우리 안에 다닥다닥 붙어 인간이 밀어 넣는 사료를 먹고 자라는, 수명을 다할 때까지 한 순간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동물들이 보일 것이다.

만약 온갖 열매가 달린 나무 60그루가 심어진 2만 m² 규모의 대지가 오직 돼지 한 마리를 위한 공간이라면, 그리고 그 돼지는 자유로이 뛰놀며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고 자란다면 어떨까. 푸아그라를 만들기 위해 거위에게 강제로 영양을 공급해 간이 급속도로 부풀었을 때 도축하는 게 아니라, 거위가 겨울에 북쪽으로 날아가기 전 영양소를 쌓아두기 위해 자발적으로 많이 먹을 때 도축한다면 어떨까.

위의 장면들이 실제로 펼쳐지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스페인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48)가 스페인 북부 바스크에서 시작해 가장 남쪽 안달루시아까지 내려가며 방문한 시골 마을들의 모습을 지난달 22일 출간된 책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에 담았다. 전작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문 교수가 수년간 휴가와 출장을 쪼개 방문했던 스페인 시골 마을 중 두세 차례 갔던 곳들을 추렸고, 2019년 약 20일간 검증을 위해 해당 마을들을 다시 방문했다.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여행지 안내서로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책에는 문 교수의 음식의 다양성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가축의 품종과 사육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믿음이 흐른다. 지난달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만난 문 교수는 “한국의 종자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GSP(Golden Seed Project)에 토종닭 종자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국은 소비되는 닭 중 토종닭 비율이 3%에 불과한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3분의 1에 달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배우고자 스페인과 프랑스 시골 탐험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더라”며 “이후 휴가 때마다 프랑스와 스페인 시골 마을을 찾았다. 제 인생 프로젝트가 됐다”고 했다.

그가 스페인 시골 마을들을 다니며 가장 놀란 점은 품종과 사육 방식의 다양성이다. 예컨대 바스크에서는 바스크 지역 재래 돼지인 ‘에우스칼 체리’ 450마리를 8만 m²의 농장에 방목해 키운다. 레온에서 소를 기르는 농부 호세는 소에게 그 지역에서 자라는 허브를 뜯어 먹게 하면서 7∼19년간 기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우를 28∼33개월, 미국은 24개월에 도축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마블링이라는 기준만으로 국가가 소의 등급을 정한다. 반면 스페인은 육질과 마블링이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를 중심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취향의 시대’에 접어든 만큼 획일적 기준에 의한 등급 부여가 옳은지 다시 생각할 시점”이라며 “유전자원을 다양화하는 것이 기후 변화, 예측 불가능한 질병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를 ‘진짜 시골’ 시리즈의 차기 후보로 생각했다가 코로나19로 잠시 미룬 그는 다음 국가가 어디가 될진 모르겠지만 끝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목포항, 쌀과 토란 농사가 이뤄지는 전남 곡성, 기후와 토양, 자라는 식물이 완전히 다른 울릉도도 정말 신기하다. 어떤 작물을 기르고 무엇을 먹는지가 사람들의 생활을 결정짓는다. 진짜 그 나라를 알기 위한 시골 탐방은 계속될 것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