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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서형 “재벌가 맏며느리 넘어 성소수자 멜로… 오랜 갈증 털어냈다”

입력 | 2021-07-01 03:00:00

tvN 드라마 ‘마인’ 배우 김서형
재벌가서 주체되는 여성 모습 담아… 둘째며느리 이보영과 워맨스 보여
권력형 드라마에 새로운 캐릭터
“서정적 멜로 연기 시도 기회… 아름다운 성소수자 사랑 묘사 고민”



배우 김서형은 ‘마인’ 4부까지의 대본을 받아 보곤 “평소 갈증 났던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작품을 하기로 결정했다”며 “이제 더 자신 있게 멜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키이스트 제공


재벌가에는 남성들이 산다. 남성들은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인다. 적자와 서자, 친모와 양모를 가려가며 서로가 우위를 차지하려 으르렁댄다. 이곳의 여성들은 주변인일 뿐이다.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을 듯했던 재벌가 클리셰다.

하지만 이제 재벌가에는 여성들도 산다. 가부장적 폐습에 갇혀 ‘나’를 지우고 살던 이들은 클리셰를 보란 듯이 전복시키고 자신과 스스로의 것들을 지켜 나간다. tvN 드라마 ‘마인’이 말하는 시대상이다. 드라마는 6월 27일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 10.5%를 찍고 종영했다. 부계 상속이 주가 되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는 마지막 회 부제 ‘빛나는 여인들’처럼 반짝인다.

그중에서도 효원가의 중심에 서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여인은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이다. 정서현은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의 ‘키다리 언니’를 자처하며 워맨스(여성들 간의 우정)를 선보인다.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보고받고 행동하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6월 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형(48)은 “오지랖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며 “비슷한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대사 앞뒤로 군더더기 감정을 뺀 채 표정으로 담백하게 연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짧은 장면에 캐릭터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연기력이 놀랍다”는 연출자 이나정 PD의 말처럼 김서형은 권력형 드라마에 새로운 캐릭터를 입혔다. 마찬가지로 배우 김서형에게도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였다. 1994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로맨스 주인공을 별로 맡지 않은 그에게 서정적인 멜로 연기를 시도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첫째 며느리로서의 멋진 모습도 많았지만 이 작품에서 내 주안점은 멜로였다”고 밝혔다. 정서현은 수지 최(김정화)와 연인인 여성 성소수자다. 김서형은 “성소수자의 멜로가 다른 이들의 사랑과 다르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만큼 아름다운 멜로를 그릴 수 있겠냐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마인’에서 효원가(家)의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왼쪽)과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존재다. tvN 제공

극중 수지 최와 헤어진 뒤 효원가에 들어온 정서현은 초반부터 내내 그를 그리워하지만, 사실 두 배우의 첫 만남은 촬영 중후반부에 이뤄졌다고 한다. 정서현이 엠마 수녀(예수정)를 찾아가 수지 최와 헤어진 날을 털어놓던 6회 장면이었다. 그는 촬영일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김정화가 상대역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김서형은 “모호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연기를 해왔기에 촬영 날 정화 씨와 처음 본 사이였는데도 애틋했다”며 “‘그리워하라고 촬영을 늦게 잡았나 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한 번 한 뒤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김서형은 “이번 작품은 멜로 촬영을 통해 무거운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2009년)의 내연녀 신애리, ‘스카이캐슬’(2018∼2019년)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등 강렬한 연기를 보여 왔다.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론 힘겨웠다고 한다. “늘 움켜쥐고 에너지 있게만 극을 끌다가 끝나는 건 인간 김서형에게는 아쉽고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신나서 연기하기 바빴다”는 그는 이번 촬영 내내 이 PD에게 의지했다고 한다. 평소 모니터링에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이 PD를 믿고 연기에만 집중하자는 뜻이었다. 이 PD는 사전 조사 후 스태프와 만들고 싶은 콘셉트를 4개월간 준비할 정도로 철저한 지휘자였다. “고급스러움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엉망진창의 관계들과 공허한 욕망을 아이러니하게 펼치고 싶었다”는 그의 이번 연출은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청춘의 성장기를 담은 ‘쌈, 마이웨이’(2017년), 로맨틱 코미디 ‘오 마이 비너스’(2015∼2016년) 등을 연출해온 그는 “때론 즐겁게, 때론 의미 있게 제 작품이 시청자에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