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고위 정치인들을 도청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이번에는 자국 언론인 사찰 의혹에 휩싸였다. NSA는 의혹이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미국 내 파장은 커지는 분위기다. 미 공화당은 하원 원내대표가 NSA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30일(현지 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케빈 맥카시 미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최근 NSA가 폭스뉴스의 대표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의 진행자 터커 칼슨을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 의회 차원의 조사를 요구했다. 맥카시 원내대표는 “NSA가 칼슨의 e메일을 염탐했다는 보고서가 있다. NSA는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며 성명을 냈다.
칼슨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프로에서 “연방정부의 내부 고발자에 의하면 NSA가 우리 전자통신, e메일, 문자 메시지를 사찰했다”고 말했다. 또 “NSA는 정부에 비판적인 우리 프로그램을 폐지시키기 위해 취득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유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칼슨은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그래서 내 e메일을 바이든 행정부가 읽었냐고 NSA 관계자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들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보수성향의 언론인인 칼슨이 그간 여러 번 허위 주장을 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찰 의혹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9월 미 법원은 칼슨과 관련한 사건의 판결에서 “칼슨의 평판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시청자라면 누구나 그가 하는 발언에 ‘적절한 회의’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하지만 NSA가 이전에도 도청, 감청, 사찰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장은 적지 않을 분위기다.
전직 NSA 요원이자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6월 NSA의 민간인 사찰 프로젝트 ‘프리즘’을 폭로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올 5월에는 2012~2014년 사이 NSA가 덴마크 국방부 산하 국사정보기관(FE)과 손잡고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의 고위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는 덴마크 언론 보도도 나왔다. 당시 메르켈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미국의 해명을 요구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