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에 선원들이 승선하는 이유는 대개 돈을 벌기 위함이다. 한 푼이라도 더 가족에게 보내겠다는 생각에 선원들은 알뜰히 돈을 모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가 거긴데, 한 푼 더 모으려고 참 많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뱃사람들이란 대개 순진하고 기분파라서 그렇게 알뜰하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생각 없이 막 써버리기도 했다. 반드시 받아야 할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 배에서 일본 여러 항을 기항하는데 일부러 마지막 항에서 내리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사람을 보았다. 알고 보니 회사가 당시에 근무일수를 1년에서 하루만 넘겨도 휴가비를 두 배나 더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선박에서는 각종 돈이 가외로 생긴다. 영업 비밀인데 한번 털어놓아보겠다. 한 번은 선장이 찾아와서 내게 몇백 달러를 주었다. 선장, 기관장, 1항사만 나누어 가지는 것이니 다른 선원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서명하라고 한다. 직급 옆에 이름이 있고 금액이 적혀 있다. 배를 빌려간 용선자가 화물을 잘 실어줘 고맙다며 보너스를 준 것이라고 했다. 화물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1항사인 나인데, 왜 선장이 더 갖나 싶었다. 갑판부 선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지 좀 궁금했다. 결국 육지에 나가 선원들 술을 사주고 말았다.
큰돈은 집으로 가는 봉급에서 만들어진다. 1980년대에는 송출선 봉급이 높은 편이었다. 선장으로 12개월 배를 타면 2000만 원 정도 모이는데,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20평(약 66m²)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모은 돈으로 부자가 된 선배가 많다.
나도 한 달에 80만원씩 12개월을 모았다. 휴가를 오면 1000만 원은 모여 있었다. 시골 고향의 우체국장이 어머니에게 항상 큰절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돈을 입금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으니까. 1000만 원에 이자도 상당할 터인데, 통장에 이자가 안 보여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자는 어디 갔닝교, 어무이.” “내가, 너 봉급 관리해주는데, 그 정도 이자를 먹지 못하니?” 명답이다. 관리수고비를 드려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보낸 봉급은 항상 원금만 있었다. 그때는 은행이자가 연 10%도 넘어서 이자를 모아도 큰돈인데 다행히 결혼하지 않았을 때라 모자간에 서로 씨익 웃고 지나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