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회사법인 굿파머스그룹의 이름 가운데 ‘그룹’은 ‘기업 집단’이 아니예요. 좋은 농부들의 ‘모임’이란 의미입니다. 좋은 농부, 스마트 농부들과 함께 제대로 된 스마트 농업을 우직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경북 상주 청리면 딸기농장 ‘우공의 딸기정원’에서 만난 박홍희 굿파머스그룹 대표가 두터운 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건넨 말이다. 8년 전 대기업의 요직을 박차고 나와 귀농한 그는 딸기 재배 업계에서 이름난 스마트 농부다.
박홍희 굿파머스그룹 대표(왼쪽)와 곽연미 굿파머스시스템 대표, 출처: IT동아
전통 딸기 재배 기술 수경재배에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해 연간 생산량을 두배 가까이 늘렸다. 대기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농업에 대입해 새로운 경영 역량을 키웠고, 이를 통해 kg당 딸기 판매 단가를 1.5배 높였다. 여기에 농사 지식을 더해 청년 농부들에게 고스란히 전하면서 스마트 농부로 함께 성장했다.
많은 것을 이룬 박홍희 대표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우공의 딸기정원 사무실로 가는 길을 진하고 향긋한 딸기 내음이 반겼다. 박홍희 대표에게 먼저 귀농 후 이룬 성과, 이루지 못해 아쉬운 점을 물었다.
“미래 농업 전문가 인정 기쁘지만, 스마트 농업으로 패러다임 바꾸지 못한 것 아쉽다”
“귀농했을 때 처음에는 참 막막했어요. 농업을 전혀 몰랐고, 땅 한평도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딸기 업계에서 이름이 제법 잘 알려진 스마트 농부가 됐죠. 수천평 넓이 농지도 생겼고요. 딸기 재배 기술과 스마트 농업, 미래 농업 전문가로 인정받은 점이 성과라고 생각해요.”
박홍희 대표는 서너마디로 갈음할 정도로 자기 칭찬에 인색했다. 그 대신 이루지 못해 아쉬운 점이 많다며 화제를 바꿨다.
“스마트 농업을 정착시켜, 우리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어요. 농업은 어엿한, 오픈 경영을 적용할 기업으로 인정받아야 해요. 이미 기업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정작 투자 업계는 농업의 기업화에 아직 큰 관심이 없었어요. 혁신 농업 사례를 소개해도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더군요. 그래도 더 노력할 겁니다.”
스마트팜 환경제어 시스템을 다루는 박홍희 대표, 출처: IT동아
“저는 스마트팜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인 스마트 농업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팜이나, 농업을 돕는다는 ICT와 유통 기술에는 투자금이 모이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스마트팜이나 ICT 기술은 농업 가운데 ‘재배’에만 도움을 주는 기술이예요. 유통도 농작물을 옮기는, 농업의 일부일 뿐이고요. 이들은 농업 산업 자체를 살찌우지는 못해요.
스마트팜이 농사를 쉽고 편하게 짓도록 돕는 만능 기술처럼 알려져 있는데, 아니예요. 특정 작물에만 적용 가능해요. 쌀과 사과, 포도와 딸기 농사짓는 법은 저마다 다르죠? 그러니까 적용할 스마트팜 기술도 모두 다른게 정상이에요. 농업은 단순하게 표준화, 획일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는 스마트팜처럼 농업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멀리 보면서 농업 전반의 프로세스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은 단순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업이 아니다. 농작물 재배 시 모든 과정을 관리 감독하고, 수확한 후 보관과 유통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물론 농작물 판매 대금과 인건비를 다루는 회계관리와 농부들의 인사, 네트워킹도 농업에 필수 요소다. 박홍희 대표가 농업을 기업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농업은 예술...전반의 질 높이려면 젊은 스마트 농부 있어야
농사는 종합 예술이예요. 재배 기술뿐 아니라 시설 관리, 경영 지식, 인사관리 등 많은 정보를 익혀야 해요. 전문직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냥 농업인이 아니라 독립 농업 경영인이 돼야 해요.
또한, 농사 기술은 물론 다년간 쌓은 노하우, 이를 통해 현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비로소 스마트 기술을 농업에 접목할 수 있어요. 이걸 아는 농부가 스마트 농부예요. 물론, 이런 농부를 그냥 육성할 수는 없죠. 그래서 굿파머스그룹은 도제식으로 가르쳐요.”
스마트 농업의 산실이 될 굿파머스그룹 딸기 육묘장, 출처: IT동아
박홍희 대표는 2017년부터 귀농한 청년 농부를 돕는 멘토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청년 농부들이 농사에 실패하지 않을지, 농촌에 정착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결론은 도제식, 함께 일하며 농사 전반을 꼼꼼하게 익히도록 알려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인턴-레지던트 농부 구조다. 전문직인 의사의 육성 구조를 그대로 따왔다.
청년 농부를 인턴 농부로 채용해 6개월간 가르치면서 딸기 농사가 적성에 맞는지를 평가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인턴 농부는 레지던트 농부가 된다. 2년, 두 작기간 함께 땀흘려 일하면서 우공의 딸기정원이 쌓은 농사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러면 레지던트 농부는 혼자 딸기 농사를 지을 정도로 성장한다. 이후에는 독립할 것인지, 우공의 딸기정원에서 계속 일할 것인지 선택한다.
그래서 박홍희 대표는 청년 농부 멘토링이 자선사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믿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농부 파트너를, 소중한 자원인 청년 농업인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청년 농업인이 농업의 미래, 스마트 농업을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아가 정부의 청년 농부 지원사업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굿파머스그룹 육묘장에서 자라고 있는 딸기, 출처: IT동아
“정부가 청년 귀농을 다각도로 지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예요. 그런데, 중장년 귀농을 지원하는 정책은 부족하더라고요. 중장년 농부도 중요한데 말이죠. 사회에서 40대, 50대 중장년은 풍부한 경험을 쌓고 기업의 임원이나 중추 역할을 하는 나이죠? 이들이 농촌에 와서 기업에서처럼 시스템을 바꾸고 지식을 쌓고 또 전수해야 돼요.
그러면 일단 농촌의 세대교체가 일어나죠. 나아가 청년 농부들이 중장년 농부에게 의지할 수 있게 돼요. 기업의 임원이 신입사원을 가르치듯, 중장년 농부가 청년 농부를 가르쳐야 해요. 롤 모델이 되는거죠. 하지만, 지금은 온통 청년 농부 지원과 교육 뿐이예요. 중장년 농부는 외면받죠. 중장년 농부는 지원이 없으니 귀농할 생각도 못해요. 그러니 청년 농부는 기대고 배울 사람이 없어 실패하고, 실망하고 다시 도시로 가요. 바뀌어야 할 농촌 노령화가 바뀌지 못해요.
중장년 농부가 청년 농부에게 비전과 성공 확신을 줘야 해요. 농촌 현장에서도 중장년 농부를 원해요. 경험 많은 노년 농부와 패기 넘치는 청년 농부를 연계할 중장년 농부는 귀농의 기반, 모범이 됩니다. 정부가 농부 지원책을 더 유연하면서도 끈끈하게 운영했으면 합니다.”
스마트 농업의 교두보, SI 기업 굿파머스시스템
스마트 팜 너머에 있는 세계, 스마트 농업이야말로 혁신적인 개념이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농업의 일부 기술에만 관심이 모이고, 농업 산업 전반의 품질을 높일 혁신 기술은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미래 농업을 이끌 젊은 스마트 농부를 키우는 것도 때로는 벅차게 느껴진다.
이 아쉬움을 조금씩 이겨내고자, 나아가 고치고자 박홍희 대표는 SI 기업 굿파머스시스템을 세웠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진짜 스마트 농업을 현실로 이끌 교두보다.
“굿파머스시스템은 스마트 농업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일단 딸기 스마트 농업에만 한정했어요. 제가 가장 잘 해왔고 또 할 수 있는 분야니까요.”
굿파머스시스템 딸기 농장 조감도와 내부, 출처: IT동아
곽연미 굿파머스시스템 대표가 이어 설명했다. 박홍희 대표의 부인으로, 함께 우공의 딸기정원을 일구고 굿파머스그룹을 세운 중역인 동시에 스마트 농부다.
“굿파머스시스템은 딸기 재배 노하우는 물론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 딸기 생산출하와 유통관리, 고객주문관리와 ERP(전사적 자원관리)까지 통합한 패키지를 제공하는 기업이예요.
우공의 딸기정원에서 우직하게 실전 농업 경력을 쌓은 우공, 젊은 스마트 농부들은 단시간에 스마트 딸기 재배장을 만들 수 있어요. 이 재배장을 여러곳 모으면 딸기 재배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이 딸기 재배 네트워크를 손쉽게 관리하는 시스템도 굿파머스시스템이 제공합니다. 재배장간 거리는 무관해요. 심지어 해외에 있는 재배장도 통합 패키지로 관리하면 문제 없어요.
굿파머스그룹 딸기 육묘장, 출처: IT동아
이를 응용해 한국형 딸기 스마트팜 표준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표준 모델을 쓰면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만 들이고도 성공리에 딸기 농사를 짓도록 하는거죠. 물론 F2C(팜 투 커스터머, 판매 관리 도구)플랫폼도 준비하고요. 프랜차이즈 딸기 농장 설계와 시공기법도 넣을 겁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집에서 딸기를 재배할 수 있게 하는 가정용 딸기 재배 솔루션은 또 어떤가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렇게 되면 해외에도 딸기 스마트 농업을 전파할 수 있게 돼요. 굿파머스그룹의 목표는 ‘세상 모든 이에게 농업과 농촌, 행복과 가치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딸기를 손쉽게 재배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쯤 되면 그룹의 목표를 이룬 셈이 아닐까요?”
박홍희 대표가 설명한 굿파머스시스템의 비전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스마트 농업’이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잘 판다. 수년간 농사를 직접 지어본 농부는 지금 농촌에 어떤 ICT가 필요한지 안다.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안다. 현장과 동떨어진 스마트 농업이 아니라, 농부의 고충을 풀고 풍성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진짜 스마트 농업을 꿰뚫어보고 또 만드는 것이 박홍희 대표의 목표다.
“딸기를 수확해 수출할 때, 지금은 모든 절차를 손으로 해요. 예를 들어 1500kg 딸기 수출건이 들어왔다고 가정할게요. 그러면 먼저 농장마다 일일이 전화해서 생산량을 언제, 어느정도 채울수 있는지 말로 물어보고 손으로 수치를 기록하는 거예요. 이런 식이니 생산량 계측도 못해요. 그러다 1500kg 무게를 못 채운다면? 어느 농장이 물량을 얼마나 못냈는지 알수 없어요. 또 전화를 돌려야 하고, 응답은 없고, 집하장에서는 답답해서 난리가 나는거죠.
이런 문제를 겪어봤으니 해결책도 알게 됩니다. 제대로 된 ICT를, 체계적인 생산과 유통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는 간단히 해결돼요.”
공사 중인 굿파머스그룹 딸기 재배장, 출처: IT동아
그러면서도 그는 굿파머스시스템이 모든 농업 부문의 고민을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농업은 표준화, 획일화할 수 없어서다. 박홍희 대표는 욕심과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그가 가장 잘 알고 잘 해온 딸기 농사에 한정해 이 시스템을 적용한다.
우공의 딸기정원 농장을 넓히고 청년 스마트 농부를 도제식으로 키운다. 스마트 농업을 써서 딸기의 상품 경쟁력과 안정된 물량을 확보한다. 굿파머스시스템의 농업 통합 패키지가 힘을 거든다. 판로가 넓어지면 또다른 우공의 딸기정원과 스마트 농부가 생긴다. 양질의 딸기를 생산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마련된다. 박홍희 대표의 청사진이다.
“천천히, 우직하게 산을 옮긴 우공처럼 우리 농업의 미래 양상 바꾸고파”
굿파머스그룹의 브랜드 이름 ‘우공의 딸기정원’은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이야기해도 천천히,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 산을 옮기는 것처럼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본딴 것이다. 박홍희 대표의 발자취, 나아가 그의 미래를 잘 표현하는 단어다.
“우공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말고,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주세요. 농업을 사랑하는, 스마트 농업을 이해하고 이끌 수백명의 농부가 나온다면, 우공이 큰 산을 옮긴 것처럼 우리 농업의 양상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굿파머스그룹 우공의 딸기정원, 출처: IT동아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딸기 스마트 농업이 자리잡도록 천천히, 우직히 시스템과 좋은 농부를 만드는 우공들. 이들은 지금도 굿파머스그룹의 딸기 육묘장에서 땀을 흘리며 배우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 농업을 조금씩 구축하고 있다. 딸기 농업계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박홍희 대표와 우공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동아닷컴 IT 전문 차주경 기자 racing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