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들은 술보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술자리를 즐기지만 알코올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던 음주문화는 이제 과거가 됐다. 바뀐 문화에 맞춰 술도 변하고 있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저도주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해외에서도 굵직한 주류 회사들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탄산주에 과즙을 첨가한 ‘하드 셀처(Hard Seltzer)’를 너나 할 것 없이 내놓고 있다.
저도주를 넘어선 비알코올·무알코올 음료 시장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이 1.0% 미만이면 술이 아닌 ‘비알코올(Non Alcoholic)’ 음료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알코올이 전혀 없는 음료는 무알코올(Alcohol Free)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비알코올 맥주가 대표적이다. 만들던 회사만 만들던 상품에서 이제는 모든 주류 회사가 앞다투어 내놓는 상품이 됐다.
전통주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일반적인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8도 사이, 대부분 6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5도까지 도수를 낮춘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비알코올 맥주와 달리 비알코올 전통주는 생소함을 넘어 그 존재를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비알코올 막걸리’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 바로 지난 2018년 2월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수블수블'이다.
비알코올 막걸리 '수블수블 0.5'은 올해 6월 기존 클래식맛 외 오미자맛, 유자맛을 추가하며 '스타일 업' 했다 (출처=IT동아)
수블수블은 지난 2018년 9월 ‘수블수블 0.9’라는 이름으로 비알코올 막걸리를 처음 시장에 선보였다. 이후 한 차례 제품 리뉴얼을 거쳐 2019년 ‘수블수블 0.5’를 내놓았고, 올해 6월에는 기존 클래식 막걸리 맛에 오미자와 유자 맛을 더한 세 가지 맛으로 제품을 재단장했다. 리뉴얼한 수블수블 0.5는 오는 5일부터 13일까지 카카오 메이커스에서 3가지 맛 혼합 세트 판매를 앞두고 있다.
수블수블 홍명자 대표가 처음부터 비알코올 음료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수블수블의 시작은 누룩 발효에 관한 홍 대표의 관심과 애정이었다. 그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레 누룩을 이용해 만드는 막걸리로 향했다. “쌀 누룩 발효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다 보니 쌀누룩 특징을 살린 비알코올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는 게 홍 대표 설명이다.
수블수블 근간에 있는 건 누룩이다. 누룩 제조에 관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출처=IT동아)
막걸리는 2010년대 전후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며 전성기를 맞았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인기가 꺾이면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홍 대표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막걸리가 여러 매력이 많은 술임에도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는 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텁텁함, 숙취 등이 그 이유라고 봤다.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연구 끝에 만들어 낸 게 바로 비알코올 막걸리다.
첫 제품은 ‘수블수블 0.9’는 2018년 9월에 출시됐다. 사무실 한켠 작은 생산 시설에서 만들었던 제품이었지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양한 곳에서 유통 문의와 수출 요청까지 받았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낮은 보존성이었다. 유통기한은 1개월짜리 냉장 제품이었다.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농업회사법인 수블수블 홍명자 대표 (출처=IT동아)
다행히 2019년에 ‘수블수블 0.5’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단점을 극복했다. 보존료 첨가 없이 산도 조절과 살균 처리만으로 유통기한을 상온보관 1년으로 개선했다. 알코올 함량도 0.5도 미만으로 더욱 낮춰 강화된 음주운전 단속 기준에 영향이 없도록 했다. 몸무게 60kg 사람이 1리터를 한 번에 마셔도 혈중알코올 농도는 0.014 수준이다. 2019년 6월부터 강화된 면허정지 기준인 0.03에 못 미친다.
수블수블 0.5는 현재 온라인에서는 마켓컬리, 쿠팡 로켓배송, 현대백화점 온라인식품관, 각종 쇼핑 포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비알코올 음료는 주류처럼 미성년자 판매 금지지만 온라인 판매는 허용된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현대백화점 6개점, 음식점 등으로 판매처가 비교적 제한적이다. 홍 대표도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오프라인 판매처를 뚫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편의점이다. 올해 6월 기존 제품을 ‘수블수블 0.5 클래식’으로 재탄생시키고 오미자맛, 유자맛을 추가한 것도 편의점 입점을 위해서다. 한 가지 맛으로는 편의점 입점도 쉽지 않고, 진열대에 시선을 사로잡기도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편의점과 올해 입점을 목표로 논의하는 단계에 있다.
세 가지 맛으로 리뉴얼한 '수블수블 0.5.' 현재 편의점 입점을 논의 중이다 (제공=수블수블)
지금은 그 매력을 알고 찾는 소비자가 있지만 수블수블이 처음부터 좋은 반응만 얻었던 건 아니다. ‘비알코올 막걸리’라는 낯선 콘셉트 때문에 ‘그게 무슨 막걸리야?’, ‘그냥 쌀 음료 아냐?’라는 부정적 반응에 부닥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품화 과정에서 ‘비알코올 막걸리’라는 콘셉트를 버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그냥 ‘쌀 발효 음료’로 홍보하면 어떻겠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홍 대표에게 ‘비알코올 막걸리’라는 콘셉트는 타협할 수 없는 수블수블의 정체성이다. 이유는 단순 명확하다. 수블수블은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막걸리 맛을 흉내 내서 만든 음료가 아니다. 직접 제작한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어낸 후 거기서 알코올만 제거하는 공정을 거쳐 생산한다. 그 덕분에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풍미와 유산균에서 오는 풍부한 산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다행히 수블수블이 첫선을 보였던 2018년과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저도주, 비알코올 음료 위상이 달라졌고, 막걸리 인기도 다시 돌아왔다. 수블수블에게 맞는 소비 트렌드가 찾아왔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홍 대표는 지금의 상황이 우연히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뚝심 있게 문을 두드린 노력에 시장이 열린 것으로 본다. 홍 대표는 “2018년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걸 해서 2021년 현재 이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블수블은 일반 막걸리와 똑같은 공정으로 제조된 후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만 추가로 거친다. 그 덕분에 막걸리가 품고 있는 복잡한 풍미와 산미를 그대로 담고있다 (제공=수블수블)
실제로 2018년까지만 해도 수블수블은 유일무이한 비알코올 막걸리였지만, 지금은 후발주자도 등장했다. 지난 4월 중견기업 일화가 ‘발왕산 막걸리 제로’를 출시하면서 비알코올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작은 기업으로서는 덩치 큰 기업이 경쟁자로 등장하면 불편할 법도 하지만, 홍 대표 반응은 달랐다. 홍 대표는 “다른 비알코올 막걸리 제품이 나오는 걸 환영한다. 시장 규모를 키워서 같이 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품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지금이라고 수블수블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완고한 애주가들은 여전히 ‘알코올이 없으면 그게 무슨 막걸리냐’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수블수블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다. 홍 대표도 수블수블이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숙취가 싫어서, 알코올에 약해서 등등 여러 이유로 ‘비알코올 막걸리’라는 걸 찾아주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홍 대표는 “취향이 다양하듯 저희 제품도 다양성 측면에서 조금 더 관대하게 받아주시고 맛봐주시고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만 수블수블을 즐겨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쉽다는 얘기가 나오는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탄산감이다. 막걸리가 품고 있는 탄산의 정체는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내뿜는 날숨이다. 그런데 수블수블은 완전히 발효를 마친 후 음료화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탄산이 거의 남지 않는다. 탄산이 없기 때문에 복부 팽만감이 덜하고 목 넘김도 부드러운 장점도 있지만, 탄산감 때문에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에겐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홍 대표는 이런 소비자들 니즈를 반영해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수블수블 탄산 버전’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음료화 단계에서 탄산을 다시 주입하기만 하면 되지만, 별도 제조 설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음료 분야 대기업과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수블수블 탄산 버전은 대기업 설비와 유통망을 통해 좀 더 많은 소비자와 만나게 될 예정이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