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르면 2023년부터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 100여 곳은 본사 소재지뿐 아니라 매출을 많이 올린 국가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저 세율은 최소 15% 이상이 적용된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전날 이 같은 내용의 글로벌 법인세 합의안을 발표했다. 139개 IF 참여국 중 아일랜드 등 9개국의 반대로 전체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130개국이 지지한 만큼 핵심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우선 여러 국가에서 이익을 내는 다국적 기업이 고정사업장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과세권을 주는 방안이 합의됐다. 적용 대상은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 원)이면서 영업이익률 10%를 넘는 다국적 기업 100여 곳이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정훈 기재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물리적 사업장이 있어야 가능했던 외국기업에 대한 과세를 사업장 없이 가능하게 한 점에서 100년간 지속된 국제조세원칙의 대변경”이라며 “조세 회피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법인세 합의안에 따라 구글, 애플 등 한국에서 매출을 올리면서도 사업장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글로벌 기업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도 국내에 내던 세금의 일부를 매출이 발생한 해외에 내야 한다.
당초 글로벌 정보기술(IT) 대기업을 겨냥해 ‘디지털세’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법인세 과세권 대상이 금융업과 채굴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이익 중 통상이익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본사나 사업자 소재지 국가가 과세하고 통상이익을 넘는 초과이익의 20~30%에 대해서는 매출이 발생한 국가가 과세 권한을 갖는 게 이번 합의안의 핵심이다.
참여국들은 7년간 이 방안대로 시행한 뒤 매출액 기준을 200억 유로에서 100억 유로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준이 확대되면 대상에 포함되는 한국 기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국가 간 이중과세 조정 절차가 있어 개별 기업의 세금 부담이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는 특정 국가가 다국적 기업에 물리는 세율이 국제적으로 합의한 세율보다 낮으면 그 차이만큼 다른 국가들이 추가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최저 세율이 15% 수준에서 확정된다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법인세의 최고 세율이 25%로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글로벌 최저한세가 도입되면 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이 줄면서 해외 기업을 국내에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저세율 국가에 법인을 둔 국내 기업들 가운데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곳이 생길 수도 있다.
이번 글로벌 법인세 개편이 100년 만에 국제 조세 체계를 흔드는 큰 변화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함께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합의안의 최종 결과가 가져올 경영 불확실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글로벌 최저 세율이 설정되면 세계 법인세율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경제계가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