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포드 행정부 때 최연소(43세) 국방장관에 올랐고, 부시 행정부에서 다시 최고령(74세)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스스로 설계한 전쟁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아프간과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처형시킨 전과도 있었다. 그러나 침공의 이유로 밝혔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현지 수용소의 수감자 학대 사실까지 불거졌다. 명분도 과정도 부적절했다는 비난 속에 그는 옷을 벗었다.
▷럼즈펠드는 동맹에도 ‘강경’했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도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에서 이라크 파병 논란이 큰 것에 대해선 ‘역사적 기억상실증(historical amnesia)’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2003년 방한해 ‘왜 한국 젊은이들이 이라크에 가서 죽고 다쳐야 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50년 전 미국이 자국 젊은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답하며 기자회견장 밖 서울의 야경과 고층 빌딩 스카이라인을 가리켰던 그였다.
▷럼즈펠드는 집무실 책상 유리 아래에 남한은 환하고, 북한은 어두운 한반도의 야경 위성사진을 넣고 업무를 봤다. 이라크와 아프간처럼 북한도 언젠가는 회복해야 할 자유민주주의의 땅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는 생전 “북한을 설득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한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일방적으로 대화 구애를 할 것이 아니라 대북 억제력을 제대로 갖췄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인 것이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