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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15년째 제자리인 전자금융법, 소비자 중심으로 논의돼야

입력 | 2021-07-03 03:00:00

박희창 경제부 기자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수장들까지 나서서 험한 말을 주고받았던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지난달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은 발의된 지 7개월째 표류 중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개정안을 두고 ‘빅브러더법’이라고 비판하고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화가 난다”고 받으면서 예견됐던 전개다. 최근엔 ‘네이버 특혜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개정안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처음 전금법 개정안의 발목을 잡은 건 ‘청산 거래’ 관할권 때문이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내부에서 이뤄지는 개인 거래 내용을 수집, 관리하는 권한을 두고 한은과 금융위 수장이 날 선 공방을 하며 ‘밥그릇 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어 개정안이 빅테크, 그중에서도 네이버에 특혜를 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회 통과는 멀어졌다. 개정안에 담긴 ‘종합지급결제업’이 도입되면 네이버, 카카오 등 비(非)은행 사업자도 계좌를 발급해 급여이체, 카드대금 납부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기존 금융사들과 시민단체들은 “은행업 인가를 받지 않은 네이버가 예대 업무만 못할 뿐 사실상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도 은행과 같은 수준의 규제는 받지 않는다”며 특혜라고 주장하고 있다.

7개월째 개정안의 발목을 잡은 두 쟁점 어디에도 금융 소비자의 편익을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한은과 금융위가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지만, 사실 청산 거래 관할권을 누가 갖든 소비자 입장에선 달라지는 게 없다.

논란의 대상인 종합지급결제업이 도입되면 소비자 혜택은 커진다. 예를 들어 청소년, 주부 등 금융 이력이 적은 이들도 종합지급결제업이 도입되면 신용 데이터를 손쉽게 쌓을 수 있고, 은행을 가지 않고도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고객 편익보다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전통 금융사와 신흥 경쟁자인 빅테크, 핀테크(금융 기술기업)들이 기 싸움을 벌이면서 특혜법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디지털 금융을 규율하는 전금법은 15년 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인 2006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큰 틀은 그대로인 채 세부 규정만 10여 차례 개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업의 디지털 전환은 더 빨라지고 있지만 전금법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이다.

지난해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금액은 하루 평균 4492억 원으로, 4년 새 7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국내 금융 소비자들이 핀테크 앱을 이용하는 횟수도 1인당 월평균 225회, 하루 7번이 넘는다. 은행 앱의 8.9배 수준이다. 금융 기술과 소비자들의 변화 속도는 이렇게 빠른데 15년 전 법을 갖고 디지털 금융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급변하는 금융환경 변화에 발맞춰 전금법 개정 논의를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의 금융 혁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전금법 개정안이 표류하면서 함께 떠내려가 버린 금융 소비자를 논의의 중심에 세워야 할 때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