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요시모토 바나나 지음·김난주 옮김/208쪽·1만4000원·민음사
읽다 보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향하고 싶은 책이 있다. 묘사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 공간을 향해 발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에세이의 배경은 일본 도쿄의 한 지역인 시모키타자와. 작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풍경을 동화처럼 그려낸다. 소설 속에서나 만날 법한 친절하고 특이한 이웃들의 이야기도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작가가 처음 시모키타자와를 찾았던 때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난 뒤 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시모키타자와에 들렀다. 눈이 살랑살랑 내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아버지와 쌓은 추억은 작가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았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작가는 자신이 낳은 아이와 이 거리를 우연히 걷게 됐다. 아이의 손을 잡은 작가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때 작가는 결심한다. 시모키타자와에 살겠다고.
시모키타자와는 서울로 치면 홍대입구나 합정 같은 지역이다. 소극장에선 연극이 벌어지고, 인디밴드들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좁은 도로 곳곳에 빈티지 가게나 선술집이 자리 잡고 있다. 북적거리는 대로 안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하고 조용한 샛길이 펼쳐진다. 중년 여성인 작가는 혼자 이 길을 걷다 록 음악에 심취한 남성을 만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독특한 서점 안으로 홀리듯 들어서기도 한다. 악착같이 살아오며 견디던 삶의 무게가 이 동네에선 조금 가벼워진다.
항상 따뜻한 소설을 써내는 작가의 푸근한 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