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이너프/다니엘 S. 밀로 지음·이충호 옮김/432쪽·2만2000원·다산사이언스 ◇우정의 과학/리디아 덴워스 지음·안기순 옮김/448쪽·2만원·흐름출판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진화관에는 수십 마리의 박제 동물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전시돼 있다. 대부분의 종(種)이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지만 기린은 모두 네 마리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진화관을 만든 사람들은 기린을 진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다산사이언스 제공
이런 설명이 타당하려면 기린은 나무에 높이 매달린 잎과 열매를 주식으로 하는 동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한 연구팀이 기린을 관찰한 결과, 기린은 주로 고개를 숙여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잎을 즐겨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린은 뇌까지 피를 순환시키려면 긴 목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심장이 기형적으로 크고 뇌를 비롯한 다른 주요 기관들이 불균형적으로 작아졌다. 긴 목은 기린을 살리는 게 아니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생물학,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유전자의 이기성(利己性) 등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 통념에 반박하는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굿 이너프’의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대원칙에 가려진 수많은 ‘최적화되지 않은 개체들의 세상’을 조명했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다.
지난 수세기 동안 우정은 인간사회에서만 공유되는 문화적인 산물로 여겨져 왔다. 이런 통념과 달리 문화가 아닌 본성과 습성에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동물군에서 우정이 발견된다고 한다.
개코원숭이들은 가족이 아닌 개체와 서로 털을 골라주고 심지어 서로 새끼들을 돌봐준다. 히말라야원숭이 중 무리와 관계가 원만한, 즉 친구 관계가 좋은 개체들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고 이 성질은 유전된다.
중요한 지점은 개코원숭이와 히말라야원숭이 모두 모계 중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우정의 필수성이 간과돼 왔던 이유가 수컷 위주의 연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동물 연구자들은 수컷 쥐를 기준으로 연구했고 이 때문에 보살핌이나 어울림보다 투쟁, 도피의 양태가 훨씬 자주 관찰됐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