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값 꺾이지 않자 불안감 확산… 중저가 단지 중심 젊은층 다시 몰려 ‘엄빠 찬스’ ‘영끌 대출’로 추격 매수… 지난 5월 거래중 30대가 37% 최다 20대 이하 비중도 통계 이래 최고, 강서-성동구는 매수절반이 젊은층 “전월세 시장 불안-공급 부족 원인”
회사원 정모 씨(27)는 최근 노원구 상계동의 A단지 전용면적 41m²를 6억 원에 매입했다. 보금자리론 3억 원에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그래도 부족한 돈은 부모님께 차용증을 쓰고 빌렸다. 정 씨는 “언니가 지난해 상계동에 산 아파트가 몇 달 만에 크게 뛰는 것을 보고 무리해서 매매를 결심했다”며 “담보대출을 받건 전세대출을 받건 빚을 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매매는 시세차익이 생기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울에서 중저가 단지가 몰려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젊은 층의 ‘패닉바잉(공황 구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아파트값 상승세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으면서 불안해진 20, 30대가 ‘엄빠(엄마, 아빠) 찬스’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대출’을 동원해 매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일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매입자 연령대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5090건) 중 20대 이하의 매수 비중이 277건(5.4%)으로 나타났다. 2019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다. 30대는 1867건(36.7%)으로 전체 연령대에서 비중이 가장 컸다. 30대 이하 젊은층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들의 거래 비중은 전체의 42.1%에 달한다. 올해 1월 44.7%로 최고점을 찍은 뒤 4월 39.3%로 축소됐던 비중이 5월에 다시 커진 셈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 지점장은 “(젊은 층이 매수에 나서는 경우) 보통 부모님께 증여세 면제 한도액(5000만 원)까지는 현금을 받고 나머지는 부모님과 차용증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받은 뒤에 법정 이자율에 맞춰 이자를 납부한다”고 전했다. 이자를 납부한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증여로 간주돼 증여세를 물고 가산세까지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주택자라도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 세금 부담이 커서 차선책으로 일단 주택 자금을 지원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2년 전 은퇴한 허모 씨(62)는 용산구와 강동구에 각각 아파트 한 채씩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달 30대 자녀에게 시세 15억 원의 강동구 아파트를 증여하려고 세무사와 상담했다가 마음을 접었다. 증여세와 증여 취득세를 합해 세금을 모두 5억 원이나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연말에 자녀가 결혼할 때에 맞춰 차용증을 써주고 주택 자금을 보태주기로 했다. 허 씨는 “다주택자 세금 규제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만큼 증여는 좀 더 기다렸다가 할 생각”이라고 했다.
저렴한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젊은 층의 매수세가 두드러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30대 이하의 아파트 매수 비중이 가장 컸던 지역은 강서구와 성동구로 두 지역 모두 50.9%였다. 이어 노원구(49.4%), 관악구(47.4%), 중랑구(47%)가 뒤를 이었다.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5월 기준)이 △강서구 6억4520만 원 △노원구 5억669만 원 △관악구 5억5371만 원 △중랑구 4억7401만 원 등 성동구(9억4224만 원)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 전체 평균(9억1713만 원)보다 낮은 지역이다.
젊은 층의 영끌이 아파트값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6월 넷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노원구는 전주 대비 0.26% 올라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노원구의 올해 누적 상승률(3.8%)도 서울에서 가장 높다. 올해 1∼5월에는 노원구에서 거래된 아파트 2채 중 1채가 30대 이하에게 팔렸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 부동산팀장은 “전월세 시장 불안과 공급 부족으로 하반기(7∼12월)에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젊은 층의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