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도 경남도 총괄건축가
허정도 경남도 총괄건축가는 “첨예한 자본주의, 천박한 세태에서 공공뿐 아니라 민간 건물의 윤리성 회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부산, 마산의 바닷가 초고층 건물들…. 영화관에서 혼자 화면 잘 보려고 벌떡 일어서는 앞줄 관객과 뭐가 다릅니까.”
허정도 경남도 총괄건축가(68)는 1일 “건축물, 특히 공공건물이 회복하고 갖춰야 할 덕목은 윤리성”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엔 멋과 편리성에 관심을 두었지만 평생 건축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건물의 윤리성에 주목하게 되더라는 설명.
그가 말하는 윤리성엔 상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높고 아름답고 편리하고 가격이 높다고 최고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경남도가 건축기본법에 따라 위촉한 공공건축가는 25명이다. 교수와 건축사 등 전문가들이다. 총괄건축가는 이들을 대표한다. 공공건축가는 경남에 들어서는 공공건물 1개씩을 전담해 의견을 내고 자문한다. 건축이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장르인 만큼 공공건물의 건축적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총괄건축가는 전담 공공 건축가를 선정하는 역할도 맡는다. 건축정책위원장으로서 행정에 조언도 한다.
그는 “신축 공공건물이 윤리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건축물은 개인 소유이나 ‘사적(私的) 존재’로 머무를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내 품안에 가두고 넣어둘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음악, 미술과 다르고 태생적으로 공공적,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2대 총괄건축가로 도청 3층 사무실에서 일을 본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그는 요즘 진주 남강변의 경남문화예술회관 증축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 대표 건축가인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설계한 이 회관의 웅장하고 독특한 구조가 현대 건축사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 2010년 준공한 경남도청 신관의 냉난방 문제도 손을 봐야 한다. 외벽 전체를 유리로 시공한 신관은 여름이면 ‘찜통건물’이어서 직원들의 불편이 크다.
최근 제기된 부동산 문제에 대해 “돈이 인격을 결정하는 첨예한 자본주의, 인간이 건물 평수나 아파트 브랜드에 매몰되는 천박한 세태가 불러온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경쟁과 질시 속에 학력과 재력의 격차 등 불평등 해소를 위해 ‘상생사회연구원’이라는 민간단체도 출범시켰다.
허 건축가는 다독(多讀)으로도 유명하다. 올해만 100권을 넘겼다. 혼자 소리 내어 읽기를 좋아한다. 얼마 전엔 20일 걸려 톨스토이의 비극적 명작 ‘안나 카레니나’를 만났다.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그는 저서도 많다. 40년을 변함없이 첫 마음으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인 ‘책 읽어주는 남편’은 1만 권 이상 팔렸다. 2018년 펴낸 ‘도시의 얼굴들’도 명저로 꼽힌다. 그는 “YMCA 80년사 집필과 광복 이후 마산의 도시 공간 변천사 저술을 준비하고 회의 참석 등으로 바쁘다. 아내와 손잡고 숲길을 걷는 것이 취미이자 건강관리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