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나는 살아 있는 바퀴벌레를 보았고, 그 안에서 내 가장 은밀한 삶과의 일치점을 발견했다.” 1964년에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 리스펙토르가 브라질의 카프카나 버지니아 울프로 여겨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혼자 사는 부유하고 성공한 여성 조각가가 어느 날 빈방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한 뒤 쏟아내는 어지럽고 심원한 독백은 비할 바 없이 관능적이다.
G.H.라 불리는 이 예술가는 옷장에 있는 바퀴벌레에 극도의 혐오감, 공포를 느끼고 옷장 문으로 눌러 반으로 으깬다. 그리고 갈라진 몸의 형상, 흘러나오는 진물, 눈동자를 응시하며 광대한 심연에 압도된다.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철저하게 붕괴시키는 영혼의 “느리고 거대한 와해”. 그것이 이 소설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의 가장 근원적인 주제인 여성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벌레를 당연히 암컷이라고 생각했다. 몸통 한가운데가 꺾인 존재는 암컷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바퀴벌레를 보고 G.H.가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개념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면서, 오직 단어로만 이해했던 그의 사랑 역시 비로소 개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시(詩)가 가장 심오한 문장이라고 보았던 당(唐)의 문인 유우석이 말했듯 “뜻을 얻으면 말을 잊게 된다.” 시의 본질을 느끼는 미적 체험에 이르면 문자라는 관념을 떠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가 그렇듯, 사랑 또한 그렇다.
인아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