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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화한 ‘성폭력 방지책’… 10건중 4건꼴 제출 안해

입력 | 2021-07-06 03:00:00

지자체들 내부 성폭력-성희롱 재발방지 소홀
최근 2년 관련 징계 109건 중
61건만 여가부에 방지대책 제출
미제출시 제재규정 없어 한계




A시에서 근무하던 6급 공무원 B 씨는 최근 징계를 받은 뒤 사직했다. 그는 올 3월 회식 자리에서 같은 부서 부하 직원의 몸을 만졌다. 조사 내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던 B 씨는 징계가 결정된 이후에야 사직했다. 이렇게 공공기관에서 성폭력 또는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3개월 이내에 여성가족부에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A 시는 아직도 마땅한 방지책을 내지 않고 있다. 이처럼 내부 성폭력·성희롱이 발생한 뒤에도 재발방지대책을 내지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성범죄 10건 중 4건은 ‘대책 없음’
 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여가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 2020년 전국 17개 지자체 소속 시군구 공무원이 기관 내에서 성폭력 또는 성희롱을 저질러 징계를 받은 건수는 109건이다. 하지만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한 것은 61건(56%)에 그쳤다. 시도별로 보면 대구와 광주, 경북은 발생한 내부 성폭력·성희롱 전체에 대해 재발방지대책을 냈다. 반면 경남(14%)과 전북(17%), 충북(27%), 전남(29%), 대전(33%) 등은 제출률이 낮아 시도별 편차가 컸다.

2016년과 2019년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과 양성평등기본법이 각각 개정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통령령으로 정한 공공단체 등 국가기관은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성폭력’ 사건과 양성평등기본법상 ‘성희롱’ 사건에 대해 재발방지대책을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직자의 성추행 방지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발방지대책 내용이 부실한 경우도 적지 않다. 통상 성폭력·성희롱 재발방지대책에는 사건 개요와 사건 처리 경과, 기관 조치사항, 성폭력·성희롱 방지조치 강화 방안, 예방교육 내실화 방안 등이 담겨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한 기관이 낸 재발방지대책을 살펴보면 ‘향후 개선계획’ 10가지 항목 중 9가지 항목이 공란으로 비워져 있었다. 이곳은 상사 한 명이 1년 동안 직원 15명 중 11명에게 신체적 언어적 성희롱을 한 곳이다.

● 여성계 “재발방지대책 미제출 처벌해야”
여가부는 “그동안 국가기관에서 성폭력·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을 여가부에 통보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발방지대책을 미제출한 기관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관련법이 개정돼 국가기관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성희롱은 올 하반기(7~12월)부터 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여가부에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각 기관이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하지 않았을 때 여전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발방지대책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는 동시에 다른 직원들의 근로환경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실효성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재발방지대책을 부실하게 제출한 기관에 보완 요구를 철저히 하겠다”며 “미제출 기관에 여가부가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연숙 의원은 “앞으로 재발방지대책 제출 등 조직문화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여가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