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소비혁명, 뉴커머스가 온다]〈4〉새 소비 찾아 이동하는 2030 “좋은 걸 다양하게 누리고 싶어”… 고가 명품-車 수시로 사고팔아 쓰던 것도 OK… 중고시장 키워
2일 오후 9시경 류준현 씨(34)와 서주희 씨(31)가 경기 광주시 팔당물안개공원에서 차박을 즐기고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2030 ‘신노마드족’은 지난해 자동차와 명품, 중고시장을 주도하는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광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직장인 류준현 씨(34)는 지난해 4000만 원짜리 신형 쏘렌토를 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긴 취미인 ‘차박’(차량 숙박)에 딱 맞는 차라고 생각해서다. 키 180cm 이상인 그도 뒷좌석 시트만 접으면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갑을 열었다. 캠핑 마니아가 되면서 침낭, 발포매트, 차량용 쿨러 등에 300만 원을 금세 썼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고가 자동차와 명품 패션잡화 등을 수시로 사고파는 2030 소비자들이 ‘신(新)노마드족’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상품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중시하며 새로운 소비를 찾아 이동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신한카드 소비데이터와 바이브컴퍼니 소셜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차박’과 ‘캠핑’이 인기를 끌면서 차를 이동수단뿐만 아니라 사적 공간으로 보는 트렌드가 생겼다. 신한카드의 업종별 매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1∼3월) 전체 소비가 8% 감소한 반면에 자동차 소비는 0.5% 증가했다. 올 1분기 전체 소비 증가율은 1.9%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차량 소비 증가율은 24.9%에 이르렀다.
“어차피 쓰다 바꿀 거”, SUV-수입차-명품… ‘행복’에 투자하는 2030
소비의 新노마드족서울에 거주하는 박지연(가명·30) 씨는 지난해 10월 중고 스포티지 차량을 1050만 원에 샀다. 서핑을 하러 강릉이나 양양으로 자주 가는데 보드부터 서핑슈트까지 실을 넉넉한 크기의 차가 필요했다. 그는 “같은 돈으로 새 차를 사면 소형차밖에 살 수 없는데 굳이 신차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며 “어차피 타다가 바꿀 거고 레저도 즐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개성 강한 경험을 추구하는 2030 ‘신노마드족’은 최근 사적 생활공간으로 부상한 자동차 관련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신노마드족은 비싸고 큰 차를 선호하지만 체험을 확대할 수 있다면 중고차 시장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 ‘이동하는 집’에 지갑 여는 신노마드족
이렇게 경험을 SNS에 공유하는 이들은 수입차 시장에서도 ‘큰손’이었다. 김익성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리스해서라도 좋은 차를 타면 그 자체가 자기 개성이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30대 이하 소비자가 수입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8%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바이브에 따르면 지난해 검색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자동차 브랜드는 아우디, 폭스바겐, 포드 등이었다. 직장인 배지은 씨(27·경기 구리시)는 작년 7월 벤츠C클래스를 샀다. 그는 “때론 보이는 게 중요하기도 하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투자했다”고 말했다.
○ 차별화된 경험 찾아 끝없이 이동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노마드족은 결국 소유보다 ‘얼마나 더 좋은 걸 쓰고 있느냐’는 효용에 가치를 두는 성향의 소비자들”이라고 정의했다. 신노마드족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싫증도 잘 내는 편이다. 중고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중고차 업체 케이카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에서 30대 비중은 33.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50대와 60대는 차를 내구 소비재로 보지만 이들은 잠깐 쓰고 교체할 대상으로 여긴다”며 “어차피 잠시 타고 말 거라서 중고를 사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노마드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프리미엄 제품의 호황과 중고시장의 부흥이라는 이질적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거래액은 전년 대비 43% 신장해 역대 최대인 5조 원에 이르렀다. 당근마켓 거래액도 1조 원을 넘겼다. 레저를 즐기는 이주은 씨(25·서울 양천구)는 라이딩용 패드바지, 헬멧 등을 중고로 산다. 그는 “중고로 사면 장비를 프로급으로 갖춰놓고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힙한 삶을 꿈꾸는 송모 씨(22·여)도 중고 의류 거래를 즐긴다. 그는 “예쁘면 되지 새것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SNS서도 뚜렷해지는 명품 열기… “명품, 물건없다” 언급 3배로 늘어
즉각적 만족 찾는 2030 선호 커지며 ‘사고싶다’-‘돈모으다’ 표현량 급증국내 ‘에루샤’ 영업익 폭발적 증가
바이브컴퍼니의 소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관련 서술어 중 전년 대비 언급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단어는 ‘물건 없다’(208.3%)였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명품시장에선 수요 폭증에 따른 재고 부족 영향으로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뜻인 ‘오픈런’ ‘샤넬런’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해외여행과 외부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2030 신노마드족의 소비는 즉시적 만족감을 주는 고가품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와 달리 2030 소비자들은 당장의 행복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비에 몰두하면서 명품 브랜드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실제 SNS상에서는 ‘오래 들다’(133.3%), ‘사고 싶다’(121%), ‘돈 모으다’(89.9%), ‘성공하다’(70.5%) 등 명품을 선망하는 듯한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들의 소비로 실제 국내 명품 업체들은 호황을 누렸다.
지난해 일명 ‘에루샤’로 불리는 3대 명품 업체의 영업이익은 각각 루이비통코리아(177%), 샤넬코리아(34%), 에르메스(15.9%)의 차례로 증가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지난해 10월 글로벌 중고 패션·명품시장 규모를 연간 33조∼45조 원으로 추산한 데 이어 향후 5년간 연평균 15∼2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주 언급되는 명품 브랜드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명품 브랜드 중 셀린(8위), 입생로랑(10위), 보테가베네타(15위), 스톤아일랜드(17위) 등 개성 있는 명품의 언급량 순위가 2019년보다 올랐다. 다만 구찌(1위), 샤넬(2위), 루이비통(3위)의 언급량 순위는 2019년과 같았다.::신(新)노마드족::고가 자동차와 명품, 중고시장 성장의 주축이 된 ‘2030’ 소비자. 소유보다 만족스러운 경험을 추구하며 소비시장을 유목민(nomad)처럼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경향을 보인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취재 황태호 사지원 이지윤 김하경 기자
▽ 사진 장승윤 기자
▽ 그래픽 김수진 기자
▽ 편집 홍정수 양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