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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메디컬북]충분히 아파하되 자책하지 말아야 상처 치유

입력 | 2021-07-07 03:00:00

상처받은 나를 위한 애도 수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은호 뉴욕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사진)이 ‘상처받은 나를 위한 애도 수업’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강 원장은 자아 심리학의 본거지인 미국 뉴욕에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정신분석학회와 대한수면의학회 총무이사, 미국 정신신체의학회 학술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애도란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리적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강 원장은 “정신분석이나 정신의학에서의 애도는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라면서 “중요한 관계에서 받는 크고 작은 상처들, 타인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가 깨지고 실망을 하게 되는 순간들, 사랑하는 이와의 결별, 삶에서의 여러 좌절과 실패들, 인생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젊음과 건강, 사회적 영향력 조금씩 사라지는 것 등이 모두 상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즉,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슬픔을 충분히 느끼는 과정이 애도의 과정이라는 의미다.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상실의 과정이고, 애도 역시 우리가 사는 동안 멈출 수 없는 작업이다. 애도 과정이 충분히 진행이 되지 않을 때 이는 외부로 향하는 과도한 분노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거나, 과거에 갇히게 된다.

저자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들(부정, 분노, 슬픔, 수용)을 알아보고, 내 안의 상처를 다시 살피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스스로와 타인에게 좀 더 여유로워지고 삶의 많은 고통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애도의 내용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아파하되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때로 이 모든 일들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죄책감과 자책감은 우리 삶에 필요하지만, 그 감정들이 과도해지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자기만의 마음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충분히 분노하고 온전히 슬퍼해야 한다. 애도는 서둘러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도의 진정한 시작은 자신의 마음 안에 어떠한 감정들이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느껴보는 것이다. 분노, 실망, 좌절감, 수치심, 죄책감 등등 많은 감정들을 세분해서 느끼고, 이를 언어를 통해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령 화풀이를 하는 것과 화를 적절한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셋째, 오직 나를 위해 울어야 한다. 상실을 직면하고 충분히 슬퍼한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넷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 우리에게는 나쁜 점만 있는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좋은 점들도 많았을 것이다. 바뀔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변화가 가능한 부분은 천천히 바꿔 나가다 보면 분명 삶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강 원장은 “최근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꼰대’ 또는 ‘라떼’라는 용어도 상실과 애도의 문제와 깊이 관련이 있다”면서 “‘나 때는 말이야’라고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이들은 젊음과 권위, 영향력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상실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애도의 과정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볼 수 있으며, 애도 없는 상실은 자신을 과거에 갇히게 만들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