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프랑스가 때 아닌 샴페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산 스파클링 와인에만 러시아어로 샴페인을 뜻하는 ‘샴판스코예(Shampanskoye)’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하자 샴페인 종주국 프랑스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일 해외산 샴페인에 샴판스코예 대신 영어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쓴 라벨만 붙이도록 하는 주류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법 개정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르몽드 등 서구 언론은 푸틴이 자신의 자금책 겸 와인브랜드 ‘노비 스벳’을 소유한 억만장자 유리 코발추크(70)를 비호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푸틴의 개인 은행가’로 불리는 코발추크는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2014년 당시 미국 재무부의 제재를 받았을 정도로 푸틴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2013년 한 스키장에서 열린 푸틴의 딸 카테리나의 결혼식 또한 코발추크가 주관했다. 러시아 곳곳에 있는 코발추크 명의 부동산의 진짜 소유주 또한 푸틴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졸지에 샴페인 명칭을 쓰지 못하게 된 해외 각국, 특히 프랑스 주류업계는 러시아 정부를 성토했다. 프랑스 샴페인생산협회 측은 “샴페인은 전 세계 120개국에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 독자 브랜드”라며 “러시아에 샴페인 수출을 중단하고, 법안 수정을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애초에 ‘샴페인’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스파클링 와인의 집산지인 북동부 ‘샹파뉴’ 지방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서 유래했다. 상파뉴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의 맛이 좋고 인기가 많다보니 스파클링 와인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된 것이다. 프랑스는 샹파뉴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 대신 ‘크레망’이라 불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샴페인 원조국가란 자부심이 강하다.
다만 당장은 푸틴 정권에 맞설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돔페리뇽 등 고가 샴페인을 유통하는 모에에네시는 5일 “러시아 수출 물량에 ‘샴페인’ 대신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표식을 붙이겠다”고 밝혔다. 당초 러시아 수출 중단도 고려했지만 프랑스 샴페인 수출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러시아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샴페인 명칭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