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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도주하듯… 미군, 아프간 바그람서 몰래 철수

입력 | 2021-07-07 03:00:00

20년 주둔 아프간 핵심 공군기지
군용품 등 물품 350만개 버려둔 채 하룻밤새 조용히 서둘러 빠져나가
아프간군 “20년 호의 잃어” 황당 반응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핵심 기지였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2일 밤 아프간군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서둘러 빠져나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아프간군은 “미군이 떠났다는 걸 다음 날 아침에야 알았다. 20년 호의를 하룻밤에 잃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바그람 기지에서 2일 밤 완전히 철수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늦게 바그람 기지에서 아프간 군인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도중 갑자기 발전기가 멈추고 식수 공급이 중단됐다. 바그람 공군기지의 새 사령관인 미르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국인들이 기지를 떠난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우리는 미군이 떠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7시가 돼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군은 떠나면서 군용품과 집기 등 각종 물품 350만 개를 버리고 갔다. 물병 수만 개, 에너지 드링크, 전투식량, 전화기, 문손잡이, 막사 창문, 문짝 등이었다. 미군이 쓰던 민간용 차량 수천 대와 버스, 장갑차 수백 대, 소형 무기도 있었다. 민간용 차량 열쇠는 대부분 미군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철수하며 전기를 끊은 탓에 조명이 꺼지자 아프간 민간인들이 기지에 난입해 집기를 약탈해 갔다고 AP는 전했다. 이들은 트럭을 몰고 와 기지 장벽을 부수고 집기를 실어갔다. 아프간군은 “처음에는 그들이 탈레반인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지 외곽 순찰 임무를 맡았던 나에마툴라는 “그들은 기지를 지키던 아프간 순찰병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났다”며 서운해했다. 미군 대변인은 “지난주 이미 아프간의 주요 미군 기지에서 철수가 진행 중이라고 성명을 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바그람 기지 철수에 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바그람 기지는 1950년대 미국이 아프간에서 옛 소련과 대립하던 시절 미군 주도로 건설됐다. 이후에는 탈레반에 맞선 미군과 아프간군의 공동 전초기지였고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도 여러 번 일어났다. 많을 땐 미군 10만 명이 바그람 기지에 주둔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