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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간호섭의 패션 談談]〈56〉

입력 | 2021-07-07 03:00:00

왕정복고 시대의 패션



조제프데지레 쿠르 ‘샤슬루로바 후작부인의 초상’, 1831년.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복고’란 과거를 그리워하며 예전 시대의 정치나 제도, 유행들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가 깊이 배어 있죠. 패션에서도 이런 복고적인 정서는 존재합니다. 과거 복고패션은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패션은 그야말로 특정 시대 복고패션 간 힘겨루기의 장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이 황제로서 집권하던 시대에 고대 그리스·로마풍 복고(신고전주의 양식)가 유행했다면 나폴레옹 몰락 후 프랑스 부르봉 왕조 복귀 후에는 프랑스 혁명 이전 왕정 시대 패션이 부활했습니다.

나폴레옹이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당한 후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을 재편하려던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 혁명으로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를 왕좌에 복귀시켰습니다. 나폴레옹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며 잠시 재집권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며 백일천하가 끝납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루이 18세에서 샤를 10세로 이어지는 왕정 시대가 다시 열렸고 생활 전반에 귀족풍 생활양식이 유행하게 됐습니다.

당시 정치에 지친 사람들은 왕정 시대 패션으로 회귀합니다. 특히 직물기계 발명과 다채로운 염색기술의 발전은 왕정복고 시대 패션을 더욱 화려하게 했습니다. 직물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둔 신흥 부르주아 계층은 자신들을 왕족 스타일로 꾸미며 왕정복고 시대 패션의 가장 큰 소비 집단이자 수혜 집단이 됐습니다.

예전 가슴 밑까지 오던 허리선은 다시 원래 허리의 위치로 돌아왔고, 일자형 드레스 실루엣은 다시 예전처럼 부풀려져 말 그대로 왕정복고 시대에 어울리는 공주풍 드레스로 회귀했습니다. 허리선을 조이기 위해 코르셋이 다시 등장했고, 폭이 넓은 예전 드레스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치마 안에 페티코트 같은 속치마를 입었습니다. 단순히 속치마로서가 아니라 페티코트에 여러 층의 주름을 장식해 더 넓어 보이게 했고, 앞 중앙을 살짝 틔워 주름 장식들이 내보이게끔 했죠.

소매 또한 치마처럼 부풀려져 양다리 모양의 레그 오브 머튼 소매(leg of mutton sleeve)가 유행했고 여기에도 치마의 페티코트처럼 고래수염으로 속패드를 만들어 그 모양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예전 바로크, 로코코 시대에 가슴선을 강조하며 노출한 데 반해 어깨선을 드러내거나 V자 형태로 넓게 어깨선을 재단한 것도 이 시대 왕정복고 패션의 특징으로 꼽힙니다. 허리선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치마가 단순해졌다가 다시 과장되고, 코르셋에서 해방되었다가 다시 코르셋으로 조이는 이 모든 것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시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은 것 같습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복고패션이 낭만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