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어려운 장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뜻하지 않은 어떤 결과 때문에, 혹은 건강 문제로 그렇기도 하다. 경영학을 전공한 뒤 전북 전주의 미디어 센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신두란 ‘고마워서그래’ 대표도 그랬다. 그는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충남 천안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좋아했던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아는 사람도, 할 일도 찾지 못해 경력에 공백이 생긴 이 상황은 그에게는 분명 장벽이었다. 게다가 첫째 아이는 음식 알레르기가 심해 밀가루, 깨, 견과류, 갑각류, 우유 등을 먹을 수 없었다. 동네 유치원은 아이 보살피기를 부담스러워했고 식당에서 아이에게 먹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꼼꼼히 물어보면 주인은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낯선 곳으로 이주, 좋아하던 직장과 이별, 아이 건강 등 장벽은 겹겹이었다.
장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취하게 된다. 하나는 상황의 희생자다. 이 경우에 장벽은 하던 일이나 목표를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반면 장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찾는 경우도 있다. 신두란 대표는 후자였다. 그는 아이 알레르기 치료보다 중요한 게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인터넷 카페 등에 관련 카드 뉴스를 만들어 이런 인식을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미국 여행 중 평범한 식당에서조차 아이들의 알레르기 여부에 신경을 써주는 것을 본 것이 자극이 됐다.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 시중에 판매되는 빵을 못 먹는 아이를 위해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 채식주의 빵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그는 자기 아이뿐 아니라 비슷한 문제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론은 천안에 작은 가게를 세내어 직접 채식주의 빵과 쿠키 등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 활동하던 공동체 마켓에 판매할 기회가 있었다. 10개 정도 판매를 예상했던 그는 80개 넘게 팔리자 자신감을 얻었다. 온라인 가게를 열어 직접 판매를 시작했고, 어느덧 사업은 1년을 넘겼다. 한번은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들을 모아 요리 수업을 진행했는데, 알레르기 때문에 요리 경험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앞으로 이 아이들을 위한 요리교실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드라마 삼각형 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자기 손에 쥐어진 카드(선택지)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카드의 종류는 다양하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경우도 있고, 신 대표처럼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작지만 의미 있는 캠페인을 시도하거나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발견해 모험을 해볼 수도 있다. 때로는 문제 해결을 위해 타인과 연대하거나 정부나 정치인에게 이슈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책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신 대표가 천안에 온 지 이제 9년이 됐다. 심각한 음식 알레르기를 겪던 아이는 어느새 모두 극복해 일반 빵도 잘 먹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이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엄마들에게 결코 엄마의 책임이 아니고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 한다. 그의 소망은 음식 알레르기로 인한 차별 없이 믿고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상처받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 절반이 지났다. 아직 시작 못한 실험이 있다면 이제 시작해보면 어떨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