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캐릭터 이용자들이 드라마로 만들어 공유 우정-외모 등 청소년 관심사 많아 2000년대 인기 끈 인터넷 소설처럼 MZ세대의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제페토를 활용해 만든 드라마 ‘일진이 착해지는 과정’의 한 장면. “빨리 가장”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등 MZ세대의 말투나 특성이 두드러진다. 유튜브 캡처
“우리 헤어지자. 솔직히 너 못생겼어.” 10대 여학생 소연은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남자친구가 평소 얼굴을 꾸미지 않는 소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 얼마 뒤 소연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외모를 가꾼 뒤 나타나자 남자친구는 다시 만나자며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이미 소연의 곁에는 외모는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해주는 새 남자친구가 있다. 소연이는 전 남자친구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소리친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해 만든 드라마 ‘여자의 변신은 무죄’의 내용이다. 2018년 출시된 제페토는 가상 캐릭터를 제공해 전 세계에서 2억 명이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자의…’는 제페토의 캐릭터를 활용해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배경음악과 자막 등을 추가해 만든 작품. 10대로 추정되는 이가 2019년 9월 유튜브에 올린 이 드라마는 최근 1년 새 입소문을 타며 54만 회나 재생됐다. 내용이 단순하고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만 10대의 관심사인 외모 스트레스를 다뤄 관심을 모았다. “뻔하고 유치한데 우리 이야기라 재밌다” “속이 시원하다” 등 공감형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처럼 제페토를 이용해 만든 드라마가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방황하던 청소년들이 우정을 쌓아가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진이 착해지는 과정’은 51만 회,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널 좋아한다면’은 16만 회 재생됐다. 현재 유튜브에는 수천 개의 제페토 드라마가 올라와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제페토가 제공하는 캐릭터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메타버스 세계를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재가공하고 있다”고 했다.
제페토 드라마가 2000년대 유행한 인터넷 소설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대 중고교생들이 기존 작가가 쓴 무거운 주제의 소설 대신 또래의 일상을 다룬 인터넷 소설을 가볍게 즐기던 것처럼 영상에 익숙한 MZ세대가 제페토 드라마를 만들고 본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MZ세대는 완성도는 높지 않아도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콘텐츠를 더 잘 받아들인다”며 “영상을 편집하고 보는 일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제페토 드라마는 그들만의 취향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