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여학생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 © 뉴스1
민주노총은 7일 정오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조합원의 죽음은 이 사회의 저임금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회적 죽음”이라며 “서울대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노동 환경을 즉시 개선해 노동인권을 보장하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사후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예방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서울대에서 산재 사망 사고로 죽어가는 청소 노동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학생 대표는 “서울대가 노동자를 존엄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용절감 대상만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죽음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자부심을 갖고 일해온 노동자들이 참담한 갑질을 당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을 유지하던 학생으로서 부끄럽다”고 했다.
서울대학교가 청소 노동자들에게 시행한 시험지. (민주노총) © 뉴스1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민주노총과 유가족은 오세정 서울대 총장실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후에는 이씨가 숨진 서울대 기숙사 건물 2층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둘러본 뒤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공개된 기숙사 925동 건물은 준공한 지 38년이 지난 탓에 화장실과 샤워실, 휴게 공간 등 대부분의 시설이 낡았고,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6명이 사용하기엔 너무 좁아 몸을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이씨는 여학생 기숙사 925동을 혼자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로 지난달 26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쓰레기 수거, 기숙사 청소 등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사망 당일 오전 10시50분 이씨와 함께 휴게실에 있던 청소노동자 허모씨는 “이씨가 별 말은 없었지만 힘들고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다. 계속 멍해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낮 12시 퇴근할 예정이었던 이씨는 밤 10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은 지병도 없던 50대 여성이 갑자기 사망한 것은 힘든 노동 강도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근무했던 925동은 건물이 크고 학생 수(정원 196명)가 많아 여학생 기숙사 중에 일이 가장 많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100ℓ 쓰레기 봉투로 매일 4개 층의 6~7개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날라야 했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에도 동료들에게 작업량이 많아 힘들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또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는 시험을 본 후 채점을 해 나눠 주고, 누가 몇 점 맞았다고 공개해 모욕감과 스트레스 유발시키고, 밥 먹는 시간까지 감시하며 보고하도록 했다고 동료 청소노동자들은 주장했다.
이씨와 함께 서울대에서 근무했던 청소노동자 A씨는 “예고 없이 시험을 본 뒤 동료들 앞에서 점수를 공개했다. 당혹스럽고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고, B씨도 “바퀴벌레 약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위서와 반성문까지 써서 홧병이 났다”고 말했다.
이에 학교 측을 향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당사자 즉각 처벌, 사후 청소노동자를 위한 예방 대책 등을 요구했다. 또 이씨의 가족과 함께 이씨의 산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서울대 내에서 청소 노동자가 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던 2019년 8월에도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302동)에서 60대 청소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이 발견된 지하 1층 남자 직원 휴게실에는 창문과 에어컨이 없는 상태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