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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아베 전 총리의 ‘반한’ 정치[특파원칼럼/김범석]

입력 | 2021-07-09 03:00:00

아베 “한국이 과거사 문제 선 넘어” 주장
내각 계승한 스가 총리에 상왕 정치 우려



김범석 도쿄 특파원


지난해 9월 28일 도쿄의 한 호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의 후원회 현장에 나타났다. 딱 한 달 전(8월 28일) 지병인 궤양성대장염 재발로 총리에서 물러난 후 총재 선거(9월 16일) 이외의 외부 활동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아베 전 총리를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 인사만 간단히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을 위해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인터뷰 한번 하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실제 인터뷰에 응할 마음이 없더라도 대개는 웃으며 넘기거나 “알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는 당황한 것인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며칠 후 아베 전 총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고 인터뷰를 위한 기획서를 보냈다. 이후 어떻게 돼 가는지 궁금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몇 번 시도 끝에 담당자로부터 받은 답은 “한국 언론과는 인터뷰하기 어렵다”였다. 바쁜 일정 때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굳이 답변에 ‘한국 언론’이라는 말을 넣었어야 했을까. 온갖 추측을 하게 하는 답이다.

아베 전 총리에게 외교 직보를 했던 외무성의 한 고위 관료가 사석에서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아베 전 총리는 미국이나 러시아 등과 어려운 협상을 할 때 일단 대화를 통해 공을 드리블하듯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대화파’인데 한국과는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료는 아베 전 총리가 이루려는 레거시(업적) 중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등을 돌리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2년 전 수출규제 조치 당시 외무성은 반대했지만 아베 전 총리는 경제산업성 출신의 최측근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당시 비서관과 함께 강행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일본 관계 기업도 피해를 본 어리석은 대책의 극치”라는 비판 사설을 싣기도 했다.

그런 아베 전 총리가 ‘재등판’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등 이른바 ‘3A(아베, 아소, 아마리 앞 글자)’로 불리는 극우 성향 정치 동지들과 자민당 내 주요 의원연맹을 만들었고 강연회를 다니며 총리 시절 강조했던 헌법 개정의 필요성도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감정도 그대로인 것 같다. 우익 성향의 월간지 ‘하나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사 문제에 “한국이 선을 넘어 일본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최대한 참으며 어른스러운 대응을 했지만 앞으로는 일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동과 언행에 명확히 반론해야 한다”고도 했다.

언론인 출신의 유명 정치 저널리스트는 아베 전 총리에게 ‘30%의 암반 지지층’이 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의 우익 사상과 행동에 지지를 나타내는 극우 세력이 30%라는 뜻이다. 아베 전 총리와 같은 암반층이 없는 ‘무파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도 재선을 위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스가 내각의 출발선 자체가 ‘아베 전 내각의 계승’이기도 하다. ‘호소다파 복귀’설까지 나오는 아베 전 총리는 구심력을 키우고 있다. ‘반한(反韓)’ 감정으로 점철된 ‘상왕’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일 관계 복원은 너무 먼 얘기 같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